조 재 근
온라인뉴스부 차장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대한민국의 도덕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예상치도 못한 대참사로 온 나라가 비탄에 잠긴 이때, 그 어떤 날카로운 비수보다 잔인한 유언비어와 억측들이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국민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SNS를 통해 망언과도 같은 촌철살인(寸鐵殺人)이 쏟아져 나온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담하다 못해 끔찍할 정도로 잔인하다.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과 상처를 준 갖가지 망언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나도는 데는 솜방망이 처벌과도 같은 사법적 판단에도 기인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갖가지 망언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유포자들을 단죄할 근거가 사실상 명확지 않다. 세월호 사고 직후 희생자를 모욕하는 글을 SNS 등에 올린 유포자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형법상 ‘모욕죄’다. 모욕죄는 1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피해자 등이 고소해야 하는 친고죄(親告罪)에 해당한다. 모욕죄보다 처벌수위가 높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3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비방하려는 당사자가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으면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른바 ‘미네르바 법’으로 불리는 허위사실유포죄, 즉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이 “표현의 자유와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이 또한 법적용이 쉽지 않다. 허위사실을 비롯한 갖가지 망언들이 유족은 물론 국민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이 명백함에도 단죄를 내리기 쉽지 않은 것이 우리나라의 사법 현실이다. 국민 법감정에 따라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하는 것 또한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지만,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 이에 부합하는 법의 엄정한 판단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세월호 참사 이후 ‘철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대중의 관심을 끌고자 망언을 내뱉는 생각 없는 10대들부터 정부의 미흡한 사고 수습과정까지 ‘철없다’는 표현이 적절한 듯하다. 단지 ‘관심받고 싶다’는 이유로 희생자들을 모욕하고, 유족들의 가슴에 씻을 수 없는 비수를 꽂는 행위를 그저 '철없다’고 치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이른바 ‘일베’로 불리는 보수 성향 인터넷 사이트인 ‘일베저장소’에 세월호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희생자와 유족을 모욕하는 글을 올린 혐의로 검거된 일베 회원은 2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성인이기에, 정치적 성향을 가질 수 있는 나이라는 점까지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참사 유족들에게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퍼붓는 것이 과연 사리 분별력을 가진 성인의 모습일지 의문이 든다. IT 강국, 한류와 케이팝(K-POP), 한반도의 기적을 외치는 대한민국이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해 각종 억측과 비난이 난무하는 부끄러운 나라로 오명 받는 것조차 이젠 화가 난다.

세월호 참사 앞에 정부는 물론 언론, 국회, 그리고 국민까지 누구도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을 주지 못하는 정부, 그리고 그 믿음을 져버리는 국민. 이런 미래가 오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얼마 전 SNS에서는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 당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현장 방문 돌발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당시 날씨와 비용문제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해경청장에게 노 전 대통령이 가슴 뜨끔한 한 마디를 던진다. “이제는 국민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진정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부, 국민이 더이상 슬퍼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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