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옥 칼럼]

충남대 정문 서쪽 후미진 곳에는 유서 깊은 유적지가 있다. 청동기시대~조선시대까지 대전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해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고색이 창연한 그 위상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알려주는 단서는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팻말이 서 있기는 하지만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몰골이다. 주변엔 잡목이 우거진데다 쓰레기까지 뒤엉켜 있다. 우리의 천박한 역사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터에서는 1999년 발굴당시 청동기시대 토기, 주거지 내부시설인 화덕자리가 확인돼 문화상의 변천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 백제시대 그 이후까지 당대의 특징적인 묘제를 연구할 수 있는 진귀한 자료도 간직하고 있다. 대전의 지형상 유등천, 대전천, 갑천이 여러 구릉 사이를 돌아 금강으로 흐른 덕분이다. 그 주변에 넓은 평야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대전의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전이 신생도시로 독특한 문화가 없다는 그릇된 인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 대전의 역사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실마리는 이곳과 가까운 공주 석장리 유적을 들 수 있다. 대전 구즉동 유적과 둔산유적 등지에서도 밝혀졌듯이 지금부터 1만 5000년 전에 갑천변에서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료(史料)가 적지 않다.

대전 역사를 거론할 때 갑천 문화의 실체를 빼놓을 수 없다. 대전이 그런 역사를 토대로 미래지향적인 도시로서의 위상을 다져가고 있는 것 또한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과학기술도시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업그레이드할 만한 원류, 요즘말로 창조적인 가치 또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궁동 유적지는 그런 점에서 그간 본보를 통해 지속적으로 제기돼온 이슈였다. 요즘 각계에서 관심을 표명하고 나서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엊그제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적인 접근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체계적인 보존활용 방안을 우리 스스로 찾아야 옳다. 우선 충남대는 지역 거점 국립대로서 역할을 십분 발휘해야 하고, 대전시 또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궁동유적지 땅 소유자인 충남대가 부지를 내놓겠다고 한 것은 당연하다. 대전시가 앞장을 서야 한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처럼 유적·유물 역시 마찬가지다. 궁동 유적지의 보존-활용-전승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긴요하다. 궁동 유적지가 매장문화재로서의 가치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다.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역사자료로서의 활용 가치를 찾는 데 주력해야 할 때다.

역사박물관화-역사테마공원화 계획에 대한 기본계획부터 수립하라. 유적지 명소화 요인은 충분하다. 여기에 스토리를 입힌다면 그 가치가 더욱 배가될 수 있다. 대전의 선사 유적지와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에 대한 타당성이 확보되면 소요 예산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가 있다. 대전시와 충남대 그리고 지역사회가 이에 대한 공감대를 구축하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못할 것도 없다. 둔산 선사유적지 공원화 계획을 이뤄냈던 지난날 선험적인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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