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회서도 선거운동 ‘눈살’

“동심(童心)의 장인 초등학교 운동회가 마치 6·2지방선거 홍보장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여 씁쓸한 마음 뿐이네요.”

지난 1일 ‘한마당 큰잔치’라는 이름으로 운동회가 열린 청주시 흥덕구의 한 초등학교.

전날까지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쌀쌀한 바람은 온데 간데 없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모처럼 만에 찾아온 화창한 봄날이다.

오전 8시부터 학교 정문과 후문에는 색색의 점퍼를 입은 이들이 운동회 참가를 위해 몰려드는 학부모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다. 다름아닌 6·2지방선거 출마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이다.

후보 이름과 약력, 공약 등이 적힌 홍보물은 학부모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길바닥에 버려진다. 나눠주고, 버리는 이들만 있을 뿐 줍는 이들은 없다. 어느새 학교 앞은 쓰레기장을 방불케한다.

교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운동회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후보간 열띤 선거홍보전은 가라앉지 않는다. 교내 절반 이상을 가득 메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후보와 운동원들. 그들의 이마는 땀으로 범벅된 지 오래다.

“꼬마야, 집에서 누구 오셨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요.” “그렇구나. 버리지 말고 꼭 갖다드려야 해.”

한 후보가 100m 달리기를 뛰고 온 탓에 가쁜 숨을 몰아쉬는 3학년 남학생에게 명함 10여 장을 손에 쥐어주며 전달을 부탁한다.

‘즐거운 점심시간’이라는 작은 현수막을 먼저 보이면 이기는 1학년 학생들의 ‘박터트리기’ 경기가 끝나자 모든 학생들이 부모가 앉아있는 풀밭과 교실 등지로 자리를 옮긴다.

대부분의 후보들이 철수했지만 3~4명의 후보들은 점심시간에도 발걸음을 재촉하며 ‘얼굴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한 후보 관계자가 3대가 모여 앉아 식사를 하는 곳을 찾았다 되레 “점심 먹는데 예의도 없느냐. 그런 사람이 무슨 정치를 하느냐?”고 핀잔을 맞는다.

다른 후보 측은 신발을 신고 교실과 복도를 다니다 “아저씨, 복도에선 실내화 신어야 되는데요”라는 한 여학생의 말을 듣고 얼굴을 붉힌다. 학부모 김모(38) 씨는 “홍보활동은 이해하지만 ‘동심의 장’인 초등학교 운동회까지 찾아와 곳곳을 다니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며 “학생을 위해 열린 운동회가 마치 선거홍보를 위해 마련된 것처럼 주객이 전도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전했다.

모든 일정이 끝난 오후 3시. 이른 오전 인파를 이뤘던 학교 정문은 발길에 짓밟혀 후보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할 만큼 찟겨나간 명함만 어지럽게 널려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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