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영랑이 1950년 오늘 유탄에 맞아 숨졌다.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김영랑은 1915년 전남 강진보통학교를 마치고 이듬해 결혼했으나 1년 반 만에 아내를 잃었다.

그는 광복 후 강진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고 대한청년단 단장을 지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49년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내는 등 우익보수주의자의 입장에서 정치에 참여한 그는 이후 고향에 머물면서 1925년 김귀련과 재혼했다.

김영랑은 1930년 정지용과 함께 박용철이 주재하던 '시문학' 동인으로 참여했고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하는 곧은 절개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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