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중부문학회 회장

임진왜란 때 도원수를 지낸 권율 장군에겐 두 사위가 있었다. 둘 다 인물이 출중하여 역사적으로도 익히 알려진 인물들이다. 큰 사위는? 신립 장군이요, 작은 사위는 '오성과 한음'의 이항복이다. 그런데 이들 두 사위에겐 젊은 시절 일화가 있다.

하루는 신립이 문경새재를 지나다 날이 저물어 양반 댁으로 보이는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집에는 처녀 하나만 살고 있었는데 사연인즉, 매일 저녁 그 집 식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죽어 가더니 자기만 홀로 남게 되었단다. 마침 오늘은 그녀가 죽게 될 차례라고 하였다. 이에 신립은 집에 묵으면서 귀신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밤이 깊어 삼경이 지나자 귀신인지 망나니인지 웬 괴한이 나타나 처녀의 몸을 달라고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였다. 이에 신립은 괴한을 단칼에 물리치고 탈을 벗겨 보니 그 집 노비였다. 노비 출신으로 주인집 딸을 아내로 취하고자 하나씩 집식구들을 죽였던 것이었다.?

이튿날 일을 마치고 서울로 출발하려 하니 처녀 또한 함께 데리고 갈 것을 간청하였다. 그러나 이미 아내가 있는 신립은 그녀를 데리고 가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 단호히 거절하였다. 그래도 처녀는 첩이라도, 아니면 노비라도 좋으니 데려가만 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래도 의지가 대쪽같은 신립은 간청하는 처녀를 뿌리치고 발길을 재촉하여 산등성이에 오르자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뒤돌아보니 묵었던 그 기와집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급히 달려가 보니 이미 그 처녀가 화염에 휩싸여 죽어 있었다. 자결한 것이었다. 서울에 당도하여 장인에게 그 사실을 아뢰니 잘못 처신해 한 사람만 죽여도 될 일을 두 사람을 죽였다고 나무랐다고 한다.?

둘째 사위 이항복은 어느 날 천안 부근 주막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그 집엔 재주가 비상하고 인물이 절색인 서른 살 노처녀가 있었다. 이 항복을 보자? 한눈에 반해버린 그 노처녀는 하룻밤만이라도 좋으니 잠자리를 함께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자결하겠다며 의지가 단호하였다. 난감한 이항복은 부모인 주인을 불러 그 사실을 말하니 부모가 간청하였다. 그래서 그는 간청에 못이겨 들어 주었다고 한다. 장인에게 이 사실을 고하니 죽을 목숨을 건졌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훗날 둘째 사위인 이항복은 병조판서로서 장인과 함께 임진난을 원만히 수행하여 후세에 칭송을 받았지만, 첫째 사위 신립 장군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背水陣)으로 왜적과 싸워 모든 군사들과 함께 전사하고 말았다.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면 사회적 규범이 있다. 즉 법도, 원칙이 있다.? 일찍이 공자는 정명(正名)을 중시하였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운 것 (君君 臣臣 父父)"을 강조하였다.?

이와 대립되는 말로 방편(方便)이라는 말도 있다. 살다보면 우리는 법대로만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방편이란 어원이 산스크리트어 우파야(upaya)로 '접근하다', '도달하다'란 뜻이다. 사람들은 수많은 근기(바탕)가 있는데 그 근기에 따라 알맞은 방법으로 그들을 인도한다는 뜻이다.

위의 예화에서 신립 장군은 원칙에 따라 처신함으로써 여인의 죽음을 초래하였고, 이항복은 방편을 사용함으로써 죽을 여인을 살린 셈이 되었다. 그런데 이 방편이란 게 묘(妙)한 것이라 조심해야 한다. 약과 같은 것이다. 똑같은 약이라도 양약도 되고 독약도 된다.방편은 '이(利)'자로 비유된다. '이롭다'와 '날카롭다'의 뜻이 있다. 날카로운 칼이 무엇을 벨 때 잘 들지만 자칫하면 다치기 십상이다.

실례로 어떤 단체나 기관을 운영하려면 법과 원칙만으로는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방편이다. 방편이란 것을 잘못 사용하여 기관의 장이나 실무자들이 크게 다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얼마 전 어느 단체에서 국고 지원금을 집행하고 잔액일부를 그 단체의 기금으로 전용하여 사법적 문제가 된 경우가 있다. 비자금 같은 것도 방편의 산물이다. 방편을 사용할 때는 우선 개인의 탐욕이 떠나야 한다. 방편이란 미명하에 자기의 탐욕을 채우려 들면 낭패와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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