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 그리고 신념이 뛰어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것으로, 스스로 참되다고 믿는 자기 확신이 아닌 오랜 세월 성찰과 배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확신과 신념을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철저하게 살다간 사람으로 소크라테스를 꼽기도 하는데, 그는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참되다고 확신하는 믿음, 즉 ‘자기 확신’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자기 확신에 빠지면 감각이나 감성을 믿고 과거 지향적이게 되며, 소유한 것을 지키려 하고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는 확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질병은 매 순간 어떻게 변할지 모르고 갑자기 위급한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데, 의사의 확신으로 환자가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는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이라 엄숙히 서약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데, 여기에는 동료를 형제처럼 여기겠다는 내용이 있다. 이는 동료 의사들과 돕고 살라는 것이 아니다. 한 개인의 지식과 경험에는 한계가 있기에 의학적 지식에 대한 ‘지적 점검’을 통해 동료 의사들과 협업해 진료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병원에서 질병에 대해 토론을 할 때 "이 환자는 무슨 병이며, 이렇게 치료하겠습니다" 이렇게 명확하고 확신에 찬 진단을 한다면 전공의일 것이다. 확신이 가장 큰 위험이라는 것을 모를 때다.

하지만 "다른 병은 아닐까? 다른 치료법은 어떨까" 이렇게 의문을 제시하고 근거를 찾기 시작하면 교수다. 질병과 치료에 이견(異見, controversy)이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이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진료이기 때문이다.

아마 진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과학이 그렇고, 사회생활 또한 그럴 것이다. 확신이 넘치는 말과 행동을 많이 하면서 실수가 잦다면 사회 초년생이고, 이견을 받아들이면서 판단을 하고 있다면 사회 중견일 것이며, 이견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고 있다면 한 분야의 일 획을 근 대표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이견이 많은 사회다. 하지만 쓸데없는 확신은 벗어 던졌고 이견을 바탕으로 한국적 문화를 만들어 내면서 선진국에 진입했다. 참으로 대단한 나라다.

문제는 정치다. 진영의 논리에 따라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하며 심지어 넷플릭스 영화 ‘지옥’을 연상케 하는 집단적 린치까지 근거 없는 자기 확신, 신념이 난무하고 있다. 다양한 이견을 조정하고 통합해야 할 정치가 사회 초년생 같은 실수를 한다. 스스로 참되다고 믿는 자기 확신의 결과다.

히포크라테스는 "인생은 짧고 예술(지식, 의술)은 길다"고 했다. 그만큼 인간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어 성찰의 공부와 점검의 노력이 없다면 누구나 다 자기 확신에 빠진다.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인데, 톨스토이는 "거짓말보다 위험한 진리의 적은 확신"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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