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업성장지원부장

누구나 일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별것 아니라 생각했다가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만나 엄청나게 고생한 적이 있다. 만약 그 기억이 더 씁쓸했었다면 아마도 그 문제가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비롯됐음을 알아차린 순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을 겪을 때 우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속담을 인용하곤 한다. 원래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표현에서 유래했다는데 마주한 상황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신을 악마로 바꾸고 싶었을까?

기술사업화지원의 영역도 외향적으로만 보면 수십 년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덕분에 마치 신의 영역처럼 큰 어려움이 없던 것 같다. 기술사업화지원의 씨앗이라 할 만한 기술들은 매년 정부의 수조 원에 달하는 연구개발 지원으로 시장에 공급되고 있으며, 기술을 사업화하는 기업들을 위한 지원책들도 기술, 인력, 자금, 장비, 시험·실증 지원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 분야도 빠짐없이 촘촘히 마련돼 있다. 또한, 지원기관들도 기술 분야별, 지역별, 기업 성장단계별로 다양하게 조직화돼 있어 기업이 처한 형편에 맞게 맞춤형 지원이 이루어진다. 혹자는 이를 두고 "전 세계 어디에도 우리 같은 지원체계는 없다." 라고 까지 말한다. 그래서일까? 올 2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창업기업 동향’에 따르면 코로나 19의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술기반 창업기업의 수가 역대 최초로 23만 개를 돌파했다.

그러나 막상 기술사업화지원 현장을 오랜 시간 경험하다 보면 그 실상이 생각보다 녹녹지 한다. 곳곳에 성공을 가로막는 ‘악마’들이 숨어있는 듯하다. 지난 2010년부터 10년간 공공기술의 사업화 성공률은 막대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20% 내외의 수준에 정체돼 있고 이마저도 감소추세다. 공공 연구기관의 기술료 수입도 1.5배 증가했지만, 건당 기술료는 오히려 57.2% 감소했다. 연구소기업의 경우, 1300여 개가 훌쩍 넘는 기업 중 기업상장에 성공한 기업은 불과 5개에 머무르고 있다. 그나마 5년 기업생존율이 75%로써 일반 기업생존율 28.5% 비해 2.5배가량 높다는 것이 그나마 큰 위로가 된다. 기업 성장이나 기술사업화 성공은 ‘떼 놓은 당상’처럼 보였는데 막상 손에 쥐어진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물론, 그동안의 기술사업화지원이 기술창업 및 기술사업화 기반을 공고히 하는데 상당 부분 기여한 사실은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제대로 된 성장이나 성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도 겸허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때 비로소 지금까지 기술사업화지원을 하면서 그토록 애타게 성과 창출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한 원인을 찾아 나설 수 있다. 그 중에서 필자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현 지원체계 내에 숨어있는 디테일한 영역이다. 이 디테일한 부분에서 제대로 해결책을 찾아낸다면 엄청난 기술사업화지원의 성과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필자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기술개발의 방향성으로 설정하고 있는 ‘초지능’, ‘초성능’, 초연결‘, ’초실감‘을 기술사업화지원의 디테일 강화 측면에서 차용해 간략히 제시하고자 한다. 즉 기술공급자와 수요자 간 정보 비대칭성이 발생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 의사 결정상의 오류를 조기에 해결하는 ‘초지능적’ 지원, 성과 창출을 저해하거나 비효율적인 요인을 찾아 제거하는 ‘초성능적’ 지원, 최종 기술제품을 염두에 두고 지원 기능 간 연계를 최적화하는 ‘초연결적’ 지원, 단순 지원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성장과 성과 과정에서의 애로사항도 철저히 챙겨나가는 ‘초실감적’ 지원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기술사업화지원에서 놓치고 있는 디테일한 요소에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 나가면 머지않아 ‘악마’가 아니라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고 말하며 자랑스럽게 기술사업화지원의 성과를 제시하는 날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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