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새 생명의 탄생은 기쁨이고 축복이지만, 임신과 출산을 앞둔 여성은 큰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다. 200여년 전 임신과 출산은 자신의 목숨을 건 위험한 여정이었다면, 현재는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하는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의료환경이 낙후된 나라에서는 대략 37명의 산모 중 1명이 출산 도중 사망하는데, 이를 기반으로 중세 시대의 산모 사망률을 추정해 보면 최소 100명의 산모 중 1명은 사망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왕비의 평균 수명은 50.8세로 일반 평민보다는 확실히 오래 살았지만, 최고의 의술을 누릴 수 있었던 왕비조차 사망의 첫 번째 이유는 임신과 출산, 즉 산후병이었다.

의학 사전은 진통을 ‘labor’로 표기한다. 출산은 여성들의 고된 노동이기 때문이다. 노동은 고통이다. 하지만 그냥 고통이 아니다. 잘못하면 목숨도 잃을 수 있는 고통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의술과 제왕절개 수술이 없던 시절 아기를 건강하게 낳았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한국에서 임신 및 출산 중 사망하는 산모는 1만 명 당 1명 정도 수준이고, 신생아는 1000명 당 1.3명 정도로 200여 년 전과는 천양지차를 보인다. 이런 의학의 발전으로 여성들은 출산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줄었지만, 출산 후 ‘독박 육아’를 하면서 치열한 삶의 경쟁까지 해야 하는 한국적 상황을 무서워한다. 한국의 출산율이 0.81명으로 전 세계 꼴찌라는 것을 보면 그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불가피한 의존을 피할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이런 돌봄 노동은 오롯이 여성이 도맡았다. 사실 돌봄은 재화나 사회적 성공과는 거리가 먼 노동이고, 심지어 자신도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의존적인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누가 이런 상황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 여기에 더해 요즘 젊은이들은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추구한다. 내 삶의 주인은 나고, 자아를 실현하며 사는 데 만족감을 느낀다. 그런데 출산과 육아는 ‘나’를 내려놓는 일 중 하나로 여기게 된다.

과거를 생각해 보자. 아이를 부모만 키웠던 것이 아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심지어 형제 자매도 나섰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을 정도다. 지금도 부모뿐만 아니라 주변으로부터 육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 갖는다. 결국 출산과 육아에도 양극화가 일어나고 있다.

인류는 가족과 공동체 동료로부터 공동의 돌봄을 오랜 기간 받아야만 하는 존재다. 고대 시대의 돌봄은 한 마을의 존폐와 관련된 중요한 산업이었다. 돌봄 노동을 재산의 소비, 분배, 또는 지원의 대상 보는 것이 아닌, 재생산을 위한 중요한 행위로 인식해야 한다.

돌봄의 핵심인 분만 의료 인프라는 이미 붕괴됐고, 어린이집 돌봄은 저임금 고노동으로 아사 직전이다. 지역사회 돌봄 문화는 정부 지원금에 따라 춤을 추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돌봄 노동을 소비재가 아닌 국가 발전의 핵심 산업으로 봐야 할 때다. 인간은 오랫동안 돌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지속 가능하고 통합적인 돌봄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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