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눈에 보이는 것, 경험한 것만을 토대로 판단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도, 경험할 수 없는 것도 상상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창의성, 그리고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기계다(Man is machine). 20세기 신비 사상가의 중 한 사람인 그루지예프가 현대인에게 내린 정의다. 그는 현대인을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로는 오직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자극에 반응하는 꼭두각시, 깊은 수면에 빠져 있는 기계와 같은 존재로 봤다. 객관 의식과 치열한 성찰로 기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고 주장했다.

인간은 스스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최신작 ‘호모데우스’를 통해 데이터교(Dataism)라는 신생종교 소개하면서 암울한 대답을 한다. 데이터교도 세상이 되면 인간은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다. 즉 이미 막대해진 데이터를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어 모든 것을 위대해진 알고리즘에 의탁하고, 스스로 지혜를 찾기보다는 알고리즘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된 세상이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그루지예프의 기계적 인간을 벗어나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데이터교도를 원천 봉쇄하고 인간의 자유의지, 온전한 ‘나’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유튜브를 보고 있다. 70%가량은 알고리즘 추천 영상이다. 이용자의 가치관에 편향된 영상을 계속 필터링하면서 내가 보고 싶은 정보만을 골라 전달해 준다. 심지어 알고 싶지 않은 불쾌한 진실도 숨겨주면서 우리를 편하게 해준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일라이 페리저는 이런 세상을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불렀다.

코로나19 대유행 전까지 이런 필터버블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존재하고, 그 다양성에 대한 접근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노력해왔던 우리기에 일탈의 필터버블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팬데믹이 이후, 사람들의 불안과 부정적 감정이 극에 달하면서 필터버블이 강화됐다. 마음까지 해킹당한 것 같은 무작위 혐오를 뿜었다. 지금은 오미크론 걸린 사람의 마스크를 성수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코로나19 초창기에 확진됐다면 그 혐오와 비난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단체, 이태원 성소수자, 요양시설 등에 대한 집단적 혐오는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조롱과 혐오의 추억은 뇌 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아 자극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재발되는 폭력적 성질이 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와 상관없는 다양한 분야에서 조롱과 비난, 그리고 혐오를 온·오프라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쩌면 하나의 유희, 또는 카타르시스가 된 듯하다. 이같은 행동이 스스로의 판단일 수도 있지만, 그루지예프가 지적한 대로 보이는 것에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미래의 우리는 유발 하라리가 말한 데이터교도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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