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이상용 충북장애인론볼연맹 전무이사
불의의 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
사고 후 1년 만에 직업재활 교육
장애인들과 만나며 인맥 넓어져
충주시 생활체육 론볼 연합회 구성
노력 끝에 市생활체육협회에 가입
"일 몰두… 할 수 있다는 성취감 얻어"
장애인체육 입문자들 많이 달라져
육체·정신 건강 좋아지는 게 장점
장애인실업팀 추가창단이 큰 목표

▲ 이상용 론볼연맹 전무. 사진=심형식 기자

[충청투데이 심형식 기자] ‘낙천(樂天)’. 국어사전에는 ‘인생과 세상의 일을 좋고 희망적인 것으로 생각함’이라고 정의한다. 이상용(58) 충북장애인론볼연맹 전무이사를 보면 ‘낙천’이란 단어가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특유의 낙천적 성격으로 그는 장애인들 사이에서 ‘인싸’가 됐다. 희망을 잃고 은둔 생활을 하는 장애인들을 햇빛아래 세우며 장애인체육을 통해 사회의 일원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렇게 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팀만 3개. 9개의 장애인체육협회 임원을 동시에 맡을 정도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 전무에게 삶의 궤적을 들어봤다.

1998년 2월 10일. 이상용 씨에게는 잊지 못할 날이다. 충주 새한미디어공장에서 설비관리 일을 하던 그는 기계에서 추락했다. IMF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공장의 안전관리 인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넘어지자마자 다시 일어서려 했지만 허리 쯤에서 바람이 스쳐가는 느낌이 났다. 꼼짝할 수 없었다. 들것도, 구급차도 없어서 봉고차에 실려 병원으로 갔다. 결과는 흉추 11, 12, 13번 골절. 하반신 마비 척수장애 1급의 장애인증이 그의 손에 쥐어졌다.

수술 후 원주기독병원에서 8개월 간 재활치료를 했다. 재활치료를 해도 걸을 수는 없었다. 온전히 휠체어를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했다.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사고 후 1년여 만에 충북장애인종합복지관 직업재활 교육을 신청해 컴퓨터 및 금속가공 교육을 이수했다. 장애인들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인맥도 넓어졌다. 2002년 인천에서 산업재해장애인축제가 열렸다. 충주에서는 눈에 띄지 않던 휠체어장애인이 그곳에선 넘쳐났다. 그리고 론볼(잔디 경기장에서 볼을 굴리며 진행하는 스포츠)을 처음 봤다.

정적인 운동인 론볼은 장애인도 하기 좋은 운동이다. 특히 중증장애인도 어렵지 않게 함께할 수 있다. 이미 충주지역 장애인사회에서 인맥을 다진 이 전무는 충주시생활체육론볼연합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충주시생활체육협회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생활체육이 활성화되면서 가맹경기단체의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론볼 역시 생활체육의 일종이니 가입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가입불가’. 장애인종목이 생활체육협회의 가맹경기단체가 된 전례가 없다는게 이유였다. 오기가 생겼다. 이 전무는 계속 충주시생활체육협회를 찾아갔다. 그리고 론볼이 장애인만의 종목이 아니라 외국에서는 활성화 된 생활체육이라는 점을 설득했다. 1년여 간의 노력 끝에 2004년 가입에 성공했다. 생활체육협회에 장애인체육단체가 가입한 것은 전국에서 처음이었다. 아직 장애인체육회가 생기기도 전이었다.

충주시생활체육협회 가입은 이 전무에게도 자신감을 넣어줬다. 이 전무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어떤 일에 몰두했던 것 같다. 가입에 성공하면서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었다. 일반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도 했다"고 회상했다.

2005년 충북장애인체육회가 설립됐다. 동계종목인 컬링팀을 창단해보자는 제안이 왔다. 창단한다면 스톤을 지원하겠다는 ‘달콤한 유혹’도 뒷따랐다. 스톤 세트 가격만 1600여만원일 때다. 론볼과 컬링은 경기 방식도 비슷하다. 론볼을 하는 선수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충북에는 훈련장이 없었다. 충주에서 강원도 춘천과 경기도 의정부를 오가며 훈련했다. 그 지역에서도 빙상장을 써야 하기에 충북장애인컬링 선수들에게 배정된 시간은 밤 11~12시 이후였다. 이 전무는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늦은 시간에 눈이 내려 미끄러운 빙판길을 오가며 열심히 훈련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이 전무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는 론볼,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는 컬링 선수로 전국을 누볐다.

장애인체육은 특성상 선수 저변이 좁고, 각 팀간의 격차가 크다. 장애인체육의 목적도 성적보다는 장애인들의 자립 및 삶의 질 향상에 있다. 2008년 울산에서 열린 전국장애인동계체전에서 충북은 신생팀인 광주와 맞붙었다. 처음 경기에 나선 광주는 기본기도 갖추지 못했었다. 장애인체육의 보급에 힘써오던 이 전무는 상대팀이지만 경기중에도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그런데 결과는 광주의 역전승. 민망할만한 상황이었지만 이 전무는 "장애인체육은 선수들이 재미를 느끼도록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라며 멋쩍어 했다.

특유의 낙천적 성격과 사교성으로 인해 장애인체육계에서 그의 인맥은 점점 더 넓어졌다. 장애인체육계 역시 정보가 중요하다. 팀 창단 계획이나 지원계획이 그의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팀을 창단하려는 측에서도 장애인선수 발굴에 능한 이 전무를 필요로 했다. 그렇게 파크골프팀까지 창단했다. 그가 직접 만든 팀만 론볼과 컬링, 파크골프까지 3개. 볼링, 휠체어테니스, 휠체어농구는 팀 창단을 도왔다. 사고 전 이 전무는 운동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사고 후 장애인체육을 접하면서 그는 행복을 찾았다. 그리고 그 행복을 나누고 싶었다. 장애인체육 보급에 힘쓰는 것도 "나 혼자만 즐겁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가 장애인체육에 입문시킨 장애인들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많은 후천적 장애인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수가 알콜중독에 빠지고 외부활동을 하지 않으며, 때로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 전무는 사교성을 이용해 장애인들을 일단 밖으로 나오게 한다. 그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체육활동을 소개한다. 일단 장애인 체육시설에 나오게까지만 하면 대부분은 성공적으로 장애인체육을 시작하게 된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웃고 대화하며 즐겁게 활동하는 모습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체육을 시작한 장애인들은 많은 성과를 얻는다. 육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 건강도 좋아진다. 대회 출전을 준비하며 목표가 생기고, 성적을 올리면 성취감도 뒤따른다. 이 전무는 "많은 장애인들이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집에만 있으니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게 된다"며 "장애인체육을 시작한 후 표정까지 바뀐 장애인들을 보는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설명했다.

환갑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 전무의 꿈은 아직도 원대하다. 장애인전용체육시설 확보와 장애인실업팀의 추가 창단이 가장 큰 목표다. 론볼을 처음 시작했던 2003년 충북에는 론볼전용 경기장이 없었다. 가장 비슷한 경기장이 테니스코트였다. 테니스코트를 빌리러 여기저기 발품을 팔았다. 역시 운동하기 좋은 시간은 일반인들의 몫이었다. 일반인들이 운동을 하지 않는 한 여름 낮 시간이나 늦은 밤이 그들의 연습시간이었다. 2005년 충북장애인전국체전을 맞아 청주 곰두리체육관에 최초의 론볼전용경기장이 생겼다. 지금은 전국에서도 몇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충북의 론볼경기장이 많아졌다. 장애인실업팀 추가 창단도 그의 관심거리다. 장애인체육 선수 역시 월급이 그리고 장비와 훈련장이 필요하다.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장애인체육이 활성화되면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은둔생활에서 벗어나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이 전무는 하루에 세번씩 청주와 충주를 오가거나 전국을 누비며 도움이 필요한 누구라도 만나고 있다.

이 전무는 "기본적인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사고 후에도 실망하거나 힘들어하진 않았지만 장애인체육을 접하면서 비로서 나의 길을 찾았다는 걸 느꼈다"며 "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형식 기자 letsgoh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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