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10대 여성의 약 10%가 겪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이라는 질병이 있다. 난소에서 호르몬의 과잉 생산으로 생리가 불규칙해지면서 살이 찌고, 방치하면 불임, 당뇨, 자궁내막암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치료는 간단하다. 꾸준한 운동과 스트레스 관리다. 하지만 한창 놀고만 싶은 젊은 시절에 자신을 통제하면서 운동을 꾸준히 병행할 수 있을까? 사실 4~5년 전만 해도 어려운 듯 보였다. 하지만 요즘은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젊은 환자들이 많아진 걸 느낀다. 자신의 운동량, 식단 등을 기록한 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말 놀라운 현상이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인 듯하다. 그렇다면 4~5년 전은 어떠했나? ‘욜로’의 열풍이 불었던 시기였다. 이효리 이상순 부부는 TV프로그램을 통해 욜로 라이프를 보여주며, 복잡한 미래를 생각하는 것보다 지금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외쳤다. 맛있는 한 끼의 식사, 스스로에게 고생했다고 주는 선물, 심지어 탕진잼, 즉 ‘재산을 탕진하는 재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하지만 갑자기 불어닥친 팬데믹 상황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한창 유행했던 욜로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어차피 현재를 즐길 수 없으니 만족을 조금 늦추고 미래를 위해 시간을 갖자는, 일명 ‘생활 속 루틴(Routinize Yourself)’이라 불리며 자신의 하루를 규칙화하고 그걸 습관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 근로시간 축소와 재택근무 확산으로 생활과 업무의 자유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자기 관리에 대한 욕구도 커졌다. 집에 혼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며, 취미 생활을 하다 보니 생활 속에서 자신의 루틴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국 전 대통령인 오마바는 의사결정에 집중하기 위해 생활 속 루틴을 만들었다고 강조했지만, 펜데믹 속에서 우리는 어쩌다 보니 생활 자체가 루틴화되는 인류가 됐다. 특히 소위 MZ세대를 중심으로 생활 속 루틴은 하나의 트렌드로 작용하면서, 자신의 일과를 완수했다고 서로에게 공유하고 인정받으며 즐기고 또 행복해하고 있다.

이전의 욜로와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다. 지금 당장이 아닌 미래를 향한 행복이며, 고령화 시대의 건강을 위한 행복이고, 소비의 욕망이 아닌 자기 주도적 행복이다. 앞서 언급한 다낭성 난소 증후군으로 치료받는 필자의 환자 중 한 명은 일과 중 운동과 식사의 루틴을 만들어 놓고,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면서 20대부터 성인병을 예방하려는 인생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생활 속 루틴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특별히 노력하는 사람의 덕목이었다. 하지만 MZ세대가 생활 속 루틴에 열광하는 이유는 100세 삶을 살아야 하는 숙명의 세대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기에 지금 당장의 행복을 좀 미루고 미래에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욜로의 종말이며 점차 이런 신인류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 어떤 생활 속 루틴을 가졌는가에 따라 100세의 삶에서 승패가 갈라지며 건강도, 행복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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