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영 대전괴정중학교 교사

박찬영 대전괴정중학교 교사
박찬영 대전괴정중학교 교사

몹시 난감하다. 무릇 '빛'이라 하면 찬란하게 물결치는 신묘한 장면을 연상해야 하거늘. '파동이냐 입자냐 요것이 문제로세' 햄슈타인 모드를 장착하면 어쩌란 말인가.

나는 과학교사다. '시인을 꿈꾸는 과학교사'다. 몇 년 전부터 닥치는 대로 글짓기 대회에 도전 중이며 이번엔 온라인 시조 대회다. 삼사삼사 삼사삼사 삼오사삼. 글자 수만 맞추면 될 줄 알았건만, '빛'이라는 주제 앞에서 방황하는 박 교사. 태초에 있던 빛부터 몽땅 끌어 모아 삼라만상에 담긴 오묘한 깨달음을 펼쳐도 시원찮을 판에 직진, 파동, 입자 따위의 지식만 둥둥 떠다니니.

“쌤! 어제 공고에서 설명해 주셨잖아요. 근데 지금 공고에 왔는데 어떡하죠..ㅋㅋㅋ”, 지난 6월 퇴근 후 뜬금없이 녀석에게 카톡이 왔다. 아끼는 자전거 뒤에 원하던 특성화고가 배경으로 펼쳐진 사진. 너무 멀다고, 진짜 죽는 줄 알았다는 아이의 메시지에 함박꽃이 그득하다. 아이의 메시지를 따라 박하사탕을 먹은 듯 마음이 화해진다.

"쌤! 아무래도 집 가까운 데 가야겠어요.. 요즘 집안 사정이 안 좋아져서 아버지가 일을 그만 두셨어요. 차비를 생각하니 무리일 것 같아요", 평소 아버지를 대신해 거의 모든 집안일을 섭렵하던 녀석이 두어 달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을 말한다. 빛을 잃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담담한 표정 앞에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당장 결정해야 할 건 아니니 조금 더 고민해보자며 돌려보냈다.

그날 밤 나는 새벽까지 뒤척였다. 잠들지 못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시조로 적었다. 이 시조가 너에게 힘이 될까. 글 안에 녀석의 마음을 담아서, 그 녀석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넣어서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날의 자전거는 오십분을 굴러갔지 / 교정을 바라보며 일 년 뒤를 그려본 너 / 비로소 갖게 된 꿈을 빛으로 품고 왔지 / 자전거론 무리인데 차비는 짐이라며 / 두 달 뒤 찾아와선 집 근처로 간다는 너 / 벌게진 눈 속의 빛이 이리도 선연한데 / 아버진 너를 품듯 짐을 안고 가실 테니 / 네 안의 빛을 따라 그대로 걸어보렴 / 그 빛이 흘러나오면 길을 보여 줄 테니

녀석이 담긴 시조를 예선 작품으로 제출했다. 본선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 달 여 뒤, 환한 햇살을 품고 쪼르르 달려오는 아이. "쌤! 저 거기 가기로 했어요!", 너에게 아직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를 나는 졸업식 날 건네주려 한다.

아이들은 시가 된다. 그 시는 때론 따끔거리지만 빛이 흐르듯 자연스럽다. 보이는 모습을 담을 뿐인데 나의 심장은 덩달아 뜨끈해진다. 빛을 품고 있는 영혼이어서 일까.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