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투데이 김윤주 기자] ☞일이 있어 케이크를 샀다.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었다. 한 할머니가 오셨다. 그리곤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다. 뒤이어 “언니, 바쁘쥬? 그냥 했어~ 아니, 그냥~ 했어요" 하시더니 끊으셨다. 정적이 흐른 뒤 할머니가 걸음을 옮기셨다. 기다리던 차가 온 모양이었다. 버스 계단을 오르던 할머니가 갑자기 뒤돌아 나를 보셨다. 그러더니 “아이구 생일인갑네. 축하해요~”라고 말하곤 떠나셨다. 낯선 어르신의 축하에 얼떨떨해졌다. 참고로 생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윽고 먹먹해졌다. 할머니는 ‘말’이 그리웠나 보다. 코로나에 시설들은 닫고 말문마저 막혔다. 의미 없는 전화도, 맞지 않는 축하도 그저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우리 할매는 2월 초에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 계시다 인사도 못한 채 그렇게 떠나셨다. 코로나에 외출·면회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할매를 뵐 수 있었다. 할매는 특히나 나를 예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적 난 '할매 바라기'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할매에게 전화를 해댔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공중전화기로 달려갔다. 할매가 우리 집에 머물다 가는 날이면 가지 말라고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할매는 나를 만날 때마다 이때의 일을 이야기하시곤 했다. 아마 그때 모습이 항상 선명하셨을거다. 2년 전, 마지막이 된 할매와의 식사시간이 떠오른다. 그때 난 갓난쟁이던 내 새끼(아들) 밥을 먹이느라 바빴다. 하지만 그때도 할매는 내 먹는 모습만 가만히 보시곤 했다. 어른이 됐어도 난 여전히 할매 새끼였나 보다.

☞나이를 먹어도 작별은 어색하다. 모두가 속절없이 떠난다. 후배가 들어오면 인사치레로 데려가던 둔산동 돈가스집이 문을 닫았다. 남편과 연애시절 소주를 기울이던 갈마동 삼겹살집도 사라졌다. 대학가를 가보면 더하다. 이름 날리던 맛집들은 쓸쓸히 퇴장했다. 코로나에 쓸려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느 회사나 직원이 관두는 건 고질병이다. 때로는 직업병이다. 무엇 하나 기약할 수 없다. '다음에도'라는 말은 경솔하기 짝이 없다.

☞때론 멍하니 회상(回想)한다. 의미 없는 회상 끝엔 항상 대학이 종착지다. 북적거림이 그리워 산만했던 캠퍼스를 떠올린다. 떼거지로 몰려갔던 개강 총회가 그립다. 수십 명이 건배하던 그 기합(氣合)도 잊을 수 없다. 술을 마시러 온 건지, 게임하러 온 건지 정체성 없던 그 시간이 간절하다. 복학생 선배의 군대 레퍼토리마저 듣고 싶다. 낭만 가득 설렜던 대학생의 마음이 갖고 싶다. 비대면 시대는 마치 ‘비관계 시대’ 같다. 그리운건 사랑일까, 아님 사람일까. 김윤주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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