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7년 전 20대 후반 여성이 조기 폐경으로 진단돼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었다. 치료 결과가 좋아 조기 폐경 여성들 중 1%에서만 임신이 되는데, 기적이 일어나 아이를 갖게 됐다. 그녀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고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아빠가 될 준비가 안 됐는지 그녀를 떠났고, 그녀는 사회적 고립 위기 속에서도 아기와의 행복을 선택했다.

최근 하정우 아버지, 배우 김용건이 화제다. 39세 연하의 13년 된 연인의 임신 문제로 언론에 노출되면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연인은 태어날 아기와의 사랑을 선택하는 현명함을 보였고, 배우 김용건의 결정과 아들 하정우의 축복 또한 훌륭했다. 연인간의 나이 차이, 사회적 비난 또는 체면을 생각해 망설이면서 젊은 연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태어날 아기의 미래를 위해 출산과 양육을 선택하며 책임을 다하겠다는 결정이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리퀴드 러브’에서 고독과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삶은 생산자 중심의 사회가 아닌 ‘소비자 사회’라고 규정한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소비자 사회는 사랑도 하나의 물품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이런 사회에서 아이를 가지고 가족을 이루는 것은 미지의 바다로 무턱대고 뛰어드는 엄청난 희생으로 치부되며 쉽게 만나고 헤어지는 쿨한 연애가 대세를 이루는 듯하다. 소비자 사회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하면 어떻게 될까? 생명의 소중함보다 나의 행복이 우선 시 될 수밖에 없다. 낙태죄 폐지 등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원하면 언제든지 임신도 정리 할 수 있게 됐다. 최근 혼전 임신 등 위험 상황에서 여성이 원하면 가명으로 비밀 출산할 수 있게 하는 보호출산제를 추진 중이다. 정체성 위기를 겪는 아동을 양산하게 될 게 뻔한데도 자기 결정권을 앞세워 입양을 강요하는 세태를 만들고 있다. 이 모두가 생명조차 하나의 물품으로 생각하는 소비자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이런 인스턴트 사랑, 자기 결정권이 최우선시 되는 한국 사회에서 30대 환자의 미혼 출산, 김용건 배우의 결정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혼 임신이면 낙태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회 환경, 비밀리에 출산을 하고 입양을 강요하게 하는 보호 출산제 등은 그 자체가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다. 정부와 국회는 취약한 여성들의 가족, 어려운 가족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먼저 확인하고, 위기임신부의 건강과 출산, 양육에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 대한 경제적 지원·상담정책 등의 개선부터 해야 할 것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무와 책임을 지겠다는 결심이다. 사람은 사랑하면서 행복해진다. 위기의 임신도 사회가 보다듬어 주고 다양한 사랑,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는 문화가 만들어 진다면 위기의 순간에서도 자신의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후회 없이 행복을 찾게 될 것이다. 지금은 쿨한 사랑이 아닌 진짜 사랑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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