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436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황제 유비(劉備)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촉한에 복속하던 남방의 오랑캐들이 일제히 반란을 일으켰다.

촉한은 나이 어린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는데다 중원(中原)의 위나라와 오(吳)나라가 호시탐탐(虎視耽耽)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이들을 정벌하기 위한 군대를 동원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제갈량(諸葛亮)은 유비가 죽은 후에도 후주(後主) 유선(劉仙)을 중심으로 보필하며 중원에 진출해 한 황실을 부흥시키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중원 진출을 위해 배후인 서남지방의 안정이 절실했던 제갈량으로서는 그들의 반란이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장수를 보내 진압에 성공한다 해도 언제 다시 변심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심하던 제갈량은 우선 나라 안을 안정시키고 중원(中原)쪽으로는 오나라와 연합해서 위나라를 견제하도록 방비해 놓은 다음 친정(親征)에 나섰다.

남만 정벌은 풍토와 기후가 달라 자연과도 싸워야 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남만의 오랑캐들과 상대해야 하는 힘든 싸움이었으나 오랑캐의 괴수 맹획(孟獲)은 제갈량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첫 전투에서 너무나 쉽게 잡혀 버린 맹획이 비겁한 술책에 의해 잡혔다고 승복을 하지 않자 제갈량은 선뜻 그를 풀어 주었다.

그 뒤로 다시 잡혀 와서도 온갖 변명과 억지를 부리며 굴복하지 않는 맹획에 대해 잡았다 풀어 주기를 반복했다.

제갈공명은 생포된 맹획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환대하며 촉군의 여러 진지와 병사들을 보여주며 안내했다.

‘촉군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라고 큰 소리쳤다.

공명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장군께서는 돌아가 군마를 재정비한 다음 다시 한 번 싸우도록 합시다.”

과연 맹획은 돌아가 진열을 가다듬고 다시 도전하여 왔지만 또 다시 생포되는 신세, 이러기를 무려 일곱 차례, 마침내 감복(感服)한 맹획은 다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마침내 일곱 번 잡혀 왔다 일곱 번 놓아주는 칠종칠금(七縱七擒)에 맹획이 제갈량의 뛰어난 지략과 넓은 도량에 감명을 받아 진심으로 항복하면서 남만 정벌은 끝이 났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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