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순 서산시의원

새해 아침이었다.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다. 뿌옇게 낀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망일산이 오늘은 더 높고 더 깊게 느껴진다.

어느 눈 오는 날 밤. 시골이 싫어, 농사가 싫어 차부로 향했다. 한 손에는 차표를, 마음 한켠엔 설렘을 안고 그렇게 고향을 등졌다. 약간의 두려움은 미래를 향한 희망으로 없어졌다.

철저한 개인주의로 무장한 거대 도시. 그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그래도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자식까지 낳았으니, 나름 성공한 삶이다.

문득, 고향 생각이 날 때면 수화기를 들어 안부를 묻는다. 잘 계셨냐고, 건강 하시냐고... 하지만 항상 당신은 자식 건강을 먼저 걱정하신다.

밤새 내린 눈에 눈이 부시다. 차량은 길게 늘어섰지만 마음은 이미 고향을 향하고 있다. 고향! 지금에서야 이 단어가 참으로 따뜻하게 느껴진다. 식탁에 우편물 하나가 놓였다. 기분 좋은 기부. 올해도 어김없이 날아든 고향세 명세서다.

고향세는 ‘고향사랑 기부제’다. 쉽게 말해 인구감소 등으로 재정난을 겪는고향에 기부하고 기부 금액의 일부 또는 전액을 세액공제 형태로 돌려받는 제도다.

현재까지 논의된 바에 따르면 10만원까지는 전액세액공제, 1000만 원까지는 16.5%, 1000만 원 초과 금액은 33%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으며 기부를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답례품을 제공할 수 있다.

출산율이 급속히 떨어지면서 소멸 위험지역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5월 기준, 소멸위기에 처한 시군구는 228곳 중 100곳을 넘어섰다.

특히, 소멸위험 지역의 90%이상이 비수도권이다. 충남의 경우 15곳 중 10곳이 포함된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어놀던 추억이 깃든 '당신'의 고향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인구(젊은층)의 유출은 지자체의 재정난을 악화시키고 악화된 재정으로는 인구를 유입시킬 도시기반 조성이 힘들다.

우리보다 먼저, 지방의 인구 소멸을 겪은 일본은 고향세의 활성화를 통해 지방을 다시 살린 효과적인 방안을 보여 주고 있다.

일본의 후루사토세(고향세)의 2008년 도입 초기에는 81억 엔(831억 원)이었지만, 10년이 지나면서 5127억 엔(5조 5000억 원)으로 63배가 늘었다.

국내에서도 지난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된 바 있었으나, 아무런 성과 없이 폐기되고만 뼈아픈 기억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고향세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다. 21대 국회에서 다시 고향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큰 틀에서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만큼 이제는 더 이상정치적 이해관계로 관련 법안이 표류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이제 곧 설(舊正)이다. 올해는 조금 다른 풍경이 펼쳐질 듯 싶다. 코로나19 때문이다. 하지만 고향을 향하는 마음, 애틋한 그리움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고향이 조금씩 소멸되어 간다. 동시에 옛 추억이 점점 흩어져 간다. 모두 흩어지기 전에 다시 또렷이 기억하고 싶다. 고향을 다녀온 아침, 식탁에 놓인 한 장의 종이 명세서. 나 혼자만의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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