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전지역본부장

얼마 전 취약계층 아동 사례관리를 하는 모 센터에서 학대 피해 아동의 심리치료비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지난해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로부터 출생신고가 안된 미등록 아동 얘기를 접했는데 바로 그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노출된 지 일 년 여가 지났는데 아직도 출생 등록이 안돼 사회복지 전산관리부여자로 등록 후 어린이집 이용과 아동수당만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확인해 보니 친모가 전 남편과 이혼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7년 여를 친부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며 두 아이를 낳고 살았던 것이다. 처음엔 아이들 출생신고를 안 하고 아동인권을 유린한 것에 필자도 아이의 부모를 원망하며 분노했다. 그러나 왜 출생등록이 안됐는지를 파악하다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들도 출생등록을 하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다 까다로운 조건에 포기했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소 부모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아이의 엄마 이름과 등록기준지, 주민등록번호’ 이 세 가지를 몰라야 가능하나 아이를 출산한 엄마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기에 유전자 검사표를 제출해도 ‘아이 엄마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법원은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다. 미혼부의 출생신고 절차가 엄격한 건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는 민법의 친생 추정 조항 때문이다. 아이 엄마가 법적으로 혼인한 상태라면 아이는 친아빠가 따로 있어도 엄마의 법적인 남편의 자녀로 추정을 받는다. 미혼부로 인한 중복 출생신고를 막고자 미혼 부모가 낳은 아이의 출생신고는 엄마로만 제한해 놓은 것이다. 지금처럼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생긴 법 조항으로 혼인을 전제로 하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는 요즘, 친생 추정 조항은 아동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지난해 대전지역에도 3가정 5명의 미등록 아동이 발견됐다. 불안한 건 전국적으로 이러한 미등록 아동이 몇 명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제도의 허점으로 나타난 그림자 아이 문제는 국가가 빠른 시일에 제도를 개선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미혼부의 출생신고가 간편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현실화해야만 한다. 둘째, ‘보편적 출생등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출생신고를 부모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다 보니 제때 출생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미등록 아동은 증가해 여러 사건사고를 통해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영국·독일·미국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보편적 출생등록 제도’를 도입,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를 바로 통보해 아동이 출생과 동시에 의료·복지·교육 등 아동으로서 누려야 할 적절한 권리를 보장받고 아동학대나 유기 등의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한 국가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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