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기 ETRI 위성광역인프라연구실 선임연구원

매일 같은 시간대에 라디오 전파를 보낸다. 누군가 이 메시지를 듣는다면 연락 달라고. 당신은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고. 인류가 멸망한 가운데 살아남은 과학자(윌 스미스 역)의 생존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주요 장면이다.

이처럼 만약에, 그럴 일이 없을 테고 절대 없기를 바라지만, 어떤 재난 상황이 닥쳤다면 우리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통신기기’이다.

통신기기는 상황 판단과 위기 모면의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요즘은 대부분 사람들이 긴급 상황 시 스마트폰부터 손에 꼭 쥐어 잡을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에 쓰이는 ‘내 손 안에 기술’ 이동통신 기술이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에는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화재사고로 휴대전화 및 인터넷 서비스 등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당시 배달 업체 라이더들도 통신이 안 돼 자체 퇴근하는 등 개인이나 상업시설뿐 아니라 112 시스템도 먹통이 됐으며, 신용카드 결재시스템의 마비는 물론, 국방부의 외부 전화망도 일시 두절됐다. 이후 완전한 복구까지는 수일이 걸렸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반도에 진도 2.0 이상의 지진만 68차례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 우리나라가 지진의 위험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아니라고 한다. 이 같은 대형 재난사고 로 기존 이동통신 인프라가 붕괴됐을 땐 ‘위성통신’이 대안이다.

위성통신은 인공위성을 이용해 통신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위성 중계기가 하늘 높이 떠있기 때문에 지상의 상황과 무관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에 필자가 있는 ETRI 연구진은 최근 재난, 재해 상황이나 이동통신이 안 되는 곳에서도 빠르게 위성통신을 가능케 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위성통신의 핵심 부품 중, 모뎀 칩 에이직(ASIC)의 크기를 50원짜리 동전 크기만큼 줄이고 비용도 대폭 감소시켰다.

다양한 목적의 범용 칩과 달리 위성통신에 필요한 기능만 담았기에 작게 만들 수 있었다.

더불어 서로 다른 신호를 동시에 주고받을 수 있는 채널 수와 전송 속도도 획기적으로 늘렸다.

상용화된 세계 최고 수준 제품들과 유사한 성능 수준이다. 국제 표준과 천리안 위성을 통한 위성통신 검증까지 마쳐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본 기술이 상용화되면 화재나 지진 등 재난 현장, 전화국 화재로 인한 통신 장애, 연근해 통신, 군 작전 지역 등 기존 이동통신이 되지 않을 때 우리나라 산간벽지 전역에서 위성으로 통신이 가능케 만들어 줄 것이다. 어떤 재해가 닥쳐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통신수단으로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

향후 연구진은 행정안전부,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 등과 함께 실제 재난, 재해 현장에서 실시간 현장 제어를 위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로 검증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기존 지상망과 더불어 활용한다면 우리 재난안전 통신망은 보다 고도화될 수 있다.

재난 상황에 대비한 기술 역량을 지니고 사회 안전 체계를 다지는 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전해준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산기술로 안정적인 통신망을 갖추고 통신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연구를 뒤로 미룰 수가 없다. 이로써 우리의 힘으로 만든 재난통신 기술이 국민모두가 어려울 때 통하는 기술이 됐으면 좋겠다. 일상생활에서나 위기 상황에서나 안전과 소통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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