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 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올 겨울에도 조류인플루엔자가 국내 여러 산란계 농장을 덮쳤다.

여러 지역 농장에서 확진 판정이 나왔고 무려 2천만 마리 이상의 닭들이 살처분을 당했다.

이럴 때면 철새 분변 속 바이러스 검출 소식이 뉴스로 단골 소재가 된다. 철새가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생물학자로 유명한 최재천 교수는 한 기고문에서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철새는 억울하다고. 철새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품고 살아온 기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천, 아니 수만 년이다.

물론 해마다 어떤 철새는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하고 죽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어떤 철새는 저항력을 갖고 있어 바이러스의 공격을 잘 이겨낼 수 있었기에 철새의 전체 생태계에는 큰 변화가 없이 유지됐다.

그런데 지금은 왜 조류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닭이 죽어가는가?

여기에 대해서 그는 인간이 여러 닭 중에 오직 달걀을 잘 낳는 닭을 인위적으로 선택하고 이를 유전적으로 복제하면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닭들만을 대량으로 집단 사육했기 때문이란다.

이로 인해 일단 농장에서 닭 한 마리만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나면, 감염되지 않은 다른 닭들도 같은 유전자이다 보니 바이러스 공격에 대응할 능력이 없어 순식간에 감염될 수밖에 없다.

다른 농가로의 확산을 막으려면 대량 살처분이 불가피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양계농장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

1980년대에는 인간이 캐번디시라는 바나나 한 품종만을 선택 재배하던 중 바나나 암으로 불리는 파나마병이 번져 대만에서만 바나나의 70%가 사멸한 사례도 있었다.

1847년에는 아일랜드에서 품종 개량한다며 거의 동일한 유전자를 보유한 감자만을 재배하다 모든 감자가 감자 역병으로 괴사하는 바람에 아일랜드인의 1/4인 200만 명이 기근으로 사망하고 200만 명이 먹을 것을 찾아 이주한 참혹한 사례도 발생했다.

우리가 더 큰 생산성과 효용을 얻기 위해 취했던 선택과 집중이 생태계 관점에서 볼 때 정작 위기의 순간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필자는 지금 코로나19위기를 겪으며 이러한 현상들이 비단 자연생태계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기업생태계,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생태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에 불어닥친 코로나 19위기로 선진국들은 -10% 내외의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1%에 그쳤다.

많은 선진국은 서비스나 항공산업 등 특정 산업에의 편중으로 이들 분야에 위기가 오자 국가 경제 전체가 직격탄을 맞았다.

반면 우리나라는 비교적 다양한 산업분포를 유지해 일부 산업 분야는 영향을 받았지만 다른 산업 분야는 비교적 잘 대응해서 오히려 더 큰 성과를 냈다.

그 중심에 전 산업 분야에서 수많은 위기를 버텨내며 살아온 우리 중소기업이 있다.

지난해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수출금지조치로 국내 반도체산업이 치명적인 위험이 닥쳤을 때도 단시간 내 대체 소재와 부품을 양산할 수 있었던 것도 코로나19위기로 온 나라가 방역에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구보다 빠르게 진단 키트와 장비를 개발하고 마스크를 적기에 시장에 내놓은 것도 우리 중소기업이었다.

그 어떤 선진국이나 대기업이 아니었다.

그들이 적정 시장규모나 미래 먹거리를 논하며 이른바 선택과 집중이야말로 최선의 전략인 것처럼 내세울 때, 비록 작은 시장이라 하더라도 자신만의 기술을 갈고 닦으며 묵묵히 위기상황에서 버텨준 중소기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중소기업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외로운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

그래서 누구보다 지원이 필요한 곳이 우리 중소기업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우리와 우리나라가 이 위기의 파고를 넘어서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중소기업을 더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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