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미성년자 만남 쉬워
온라인 통한 그루밍성범죄 심각
처벌 제도도 없어… 근거 마련必

사진 = 랜덤채팅에서 만난 A 씨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취재진과 대화를 나눈 카톡 캡쳐.
사진 = 랜덤채팅에서 만난 A 씨가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취재진과 대화를 나눈 카톡 캡쳐.

[충청투데이 조선교 기자] 본보 취재진이 ‘랜덤채팅’과 ‘오픈채팅’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나섰다. 몰지각한 성인들이 랜덤·오픈채팅을 통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매수를 시도한다는 제보를 받고 지난 주말 이틀에 걸쳐 15세 여성으로 위장해 성매수자들을 직접 만났다. 그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취재진이 마주한 온라인상 현장에선 성매수자와 미성년자의 접촉이 너무나도 쉽사리 이뤄졌고 법질서나 윤리적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법지대가 펼쳐졌다.

채팅에서부터 만남까지 대전 도심 한복판에서 버젓이 벌어진 파렴치한 성인들의 민낯을 들여다 본다. 랜덤채팅 앱을 가입으로 본격 취재는 시작됐다. 불과 1시간만에 20~40대, 공무원부터 유부남, 대학생까지 20명 안팎의 남성들이 검은손을 내밀었고 이 가운데 3명은 이튿날 대전 서구의 약속 장소까지 찾았다. 앞서 이들은 이틀간 채팅방에서 대화를 진행하며 청소년에게 호감을 얻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을 가하는 이른바 ‘그루밍’ 행위를 지속했다. 

또 틈틈이 메시지로 ‘뭐 조건사기 그런 거 아니지’라며 경계를 풀지 않았고 고액의 현금을 미끼로 목소리 확인과 사진 인증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취재진이 요구에 응하자 일부는 개인정보 추적이 가능한 모바일 메신저의 아이디까지 알려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취재진이 미끼를 물었다고 생각한 이들의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n번방’ 사태가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그루밍 행위에 응답하는 순간부터 실제 만남이 성사되기까진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제 만남이 있었던 당일. 가장 먼저 대전을 찾은 A 씨는 경기도에서 직접 차량을 몰고 약속장소인 타임월드 인근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물다섯 살 남자친구는 어때? 나중에 걸리면 여자친구라고 하면 되니까”. 앞서 그가 취재진을 만나기 전 회유하면서 반복했던 말이다. 실제 만남이 있기 전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A 씨는 15세 여성으로 가장한 취재진에게 20만원의 현금을 미끼로 조건만남 등 성매매를 요구하면서 다양한 감언이설로 안심을 유도했다. 그러나 그는 현장에서 만난 취재진이 신분을 밝히자 성매수 시도를 강하게 부인했다.
 

사진 = 조건만남을 안내하는 오픈채팅 캡처
사진 = 조건만남을 안내하는 오픈채팅 캡처

취재진의 설득 끝에 A 씨는 인터뷰에 응했고 “미성년자와 성관계는 처음이라 기대했다”며 “다만 성매매로 인해 아이가 잘못되진 않을까 걱정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취재진에게 지속해왔던 그루밍 행위를 고려하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같은날 오후 5시경 만난 또다른 성매수 시도자 B 씨는 범행 시도가 들통난 뒤에도 “미성년자와의 성관계가 로망이었다”고 언급하면서 기회가 또 있을 거라는 취지의 황당한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앞서 그는 취재진에게 자신을 유부남이라고 소개했음에도 “순종적이면 나중에 엄청 (현금을) 많이 줄수도 있다”며 현금 20만원을 줄테니 피임용품을 쓰지 않겠다는 등 구체적인 요구까지 내건 바 있다.

세종에서 약속 장소를 찾은 C 씨는 대학생 신분이었다. 그는 만나기 직전까지 “돈을 더 줄테니 다음날까지 함께 있자”며 흥정하듯 대화를 나눴지만 취재진과 마주친 뒤 달아났다. 이밖에도 지난 주말 이틀 간 랜덤채팅상에선 단지 정보를 15세 여성으로 기입했을 뿐이지만 전국 각지의 남성들로부터 성매매를 위한 그루밍 행위와 협박이 반복됐고 성희롱도 숱하게 이어졌다.

취재진은 이 기간 중 오픈채팅 앱에서 포착된 ‘대전알바’, ‘학생가능’, ‘숙식제공’, ‘기본 월300’ 등 채팅방의 민낯도 살펴봤다. 이 채팅방에서도 취재진을 15세로 가장했지만 대화 상대들은 대부분 조건만남과 유흥업소 일을 유도했다. 이들은 채팅방 대화에서 업소 위치 등 자세한 언급을 피하며 초반엔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금전적인 부분에 관심을 보이자 과감해졌다.

도마동과 갈마동 원룸에서 숙식을 제공한다는 D 씨는 신체 사이즈나 성적 취향 등을 묻는가 하면 교복 복장에 대해서도 “그런 복장을 원하는 손님이 있다”며 “면접 수위가 쎄다. 모텔에서 면접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특히 이들은 ‘개인적으로 (성매매를) 하는 거 보단 우리를 끼고 하시는 게 안전하다’, ‘걸리지 않으면 괜찮다’ 등 안심을 유도하면서 조건만남을 적극적으로 회유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아동과 청소년을 성매매로 유인하는 행동 자체를 그루밍 성범죄로 규정하고 해외에선 처벌이 당연시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러한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제도가 아직까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한 성매매 피해자 지원기관 관계자는 “청소년 등의 성매매를 유도하는 행위들이 모두 온라인상의 음지로 이동했다”며 “그런 만큼 온라인 그루밍 행위에 대한 처벌 근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교 기자·송혜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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