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의 충청역사유람 107 충남에 첫 대학서다
충남도립대학설립위원회 주도…
지역 첫 4년제 도립충남대학교 탄생
초반엔 도지사들 총장 직위 겸하다가
학자 민태식 문리대학장에 지위 부여
교실없어 자동차 차고·축사서 공부
악조건 속에서 학생들 학구열 불타
진헌식 지사, 건립비 모금운동 펼쳐
도민들 교육열 뜨거워… 열성적 호응

▲ 1953년도 개교 1주년 기념식. 충남대학교 제공
▲ 1960년대 문화동 캠퍼스. 충남대학교 제공
▲ 진헌식. 충남대학교 제공

1950년 6·25 전란 속에 서울에 있던 대학들이 대전으로 피란을 왔지만 저마다 간판을 걸고 강의를 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전시 연합대학'이라는 것으로 피난 온 대학들이 한 곳에 모여 강의를 하는 등 학사운영을 했다.

하지만 1952년 전쟁이 소강상태를 보이자 전시 연합대학에 참여했던 대학들이 하나씩 둘씩 서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속에 당시 진헌식 충남지사가 우리 지역에 대학을 세우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진 지사의 이 주장은 도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고 민간운동으로 전개됐다. 특히 국문학자 지헌영(1911~1981)선생의 역할이 컸다. 그는 연희전문학교 (현 연세대학교) 재학 중 항일운동을 하다 투옥과 퇴교를 당하기도 했으며 한글학회 활동을 하는 등 충청의 대표적 국문학자이며 선비로 존경 받아 왔었다. 이렇게 하여 1952년 5월 21일 가칭 '충남도립대학설립위원회'라는 공식기구가 출범되었다.

위원장에는 진헌식 충남도지사가 맡고 이원양, 고인섭 등 10여명의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해 6월 30일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대학인가를 받았으며 이로써 도립충남대학교로 출범을 하게 된다. 이 지역 첫 4년제 대학의 탄생이다.

▲ 1960년대 초 보운캠퍼스 전경. 충남대학교 제공
▲ 1960년대 초 보운캠퍼스 전경. 충남대학교 제공
▲ 1960년대 공과대학 수업모습. 충남대학교 제공
▲ 1960년대 공과대학 수업모습. 충남대학교 제공
▲ 1980년대 대덕캠퍼스 신축공사 기공식. 충남대학교 제공
▲ 1980년대 대덕캠퍼스 신축공사 기공식. 충남대학교 제공

초대 총장은 진헌식 도지사가 맡았는데 2대 성낙서 지사, 3대 이기세 지사로 이어지다 이기세 지사 때 '아무래도 총장은 학자가 맡는 게 좋겠다.'고 하여 충남대 문리대 학장이던 민태식 박사가 맡았다.

충남대가 처음에는 국립이 아닌 도립으로 출발했지만 대학도 문리과대학, 농과대학 두 대학 뿐이었다. 그나마 교실도 없어 문리대는 충남도청 자동차 차고에서 강의를 했고 농과대학은 대전농사시험소 축사를 강의실로 개조해서 사용했다.

그런데 자동차 차고는 자동차 기름 냄새가 진동했고 농과대학이 사용하는 축사는 소·돼지 등 가축 분뇨냄새가 심각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향학열에 불탔고 교수들 역시 열성으로 강의를 했다. 지금 현대적 건물과 광활한 캠퍼스를 자랑하고 있는 충남대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있다. 또 하나 충남대의 특기할 일은 학교를 세울 예산을 마련하는 것이다. 625 전쟁을 치르는 나라, 그것도 지방자치단체로서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진헌식 지사가 제창한 것이 '일두'(一斗)운동이다.

한 가구당 여름에 보리 한 말, 가을에 벼 한 말을 충남대학교 건립비로 내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농한기를 이용하여 가마니를 짜서 한 장씩 내자는 운동도 했다.

요즘 같으면 특정 대학을 위해 이런 '준조세' 성격의 기부운동을 하는 것에 반발이 크겠지만 그 때는 호응이 컸다.

이렇게 도민들이 호응을 한 것은 도민들의 뜨거운 교육열과 진헌식 지사가 직접 시·군을 다니며 '우리대학, 우리 손으로 세우자'는 설득을 하며 진두지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충남대학은 지금은 비록 국립대학이 됐지만 전시임에도 보리 한 말, 벼 한 말 모아 준 충남도민들이 정신적 주주 인 셈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대전시도 충남도였다)

그 다음 문제는 대학 부지를 물색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채택된 곳이 지금 대전시 서구 괴정동 이었는데 이곳은 시내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통학에 불편하다는 이유로 부결되었다. 그런데 이곳이 지금은 대전의 중심지가 되었으니 이 또한 격세지감이 있다.

이렇게 하여 겨우 채택된 곳이 지금 충남의대 자리 8000평.

여기에서 현 유성 캠퍼스로 옮길 때까지 25년간 충남대학의 기틀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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