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동생과 화목하게 살아가는 수진
장애·비장애인 모두 편하게 사용 가능한
가구 만들고 싶어 산업디자이너 꿈가져
무용부 활동 등 도전 멈추지 않는 소녀…
파워포인트·한글 자격증 취득도 이뤄내
지금은 사물 그려보며 디자인 기초 배워
대학입시 실기준비 필수… 전문교육 필요
숨은보석찾기 캠페인과 첫발 내딛기로
지역사회와 함께 희망의 밑그림 그릴 것

[연중기획 숨은보석찾기 캠페인]
① 루비를 닮은 수진이 (上)

[충청투데이 서유빈 기자] 대전지역 아이들의 꿈과 끼를 지원하는 '숨은보석찾기' 캠페인이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올해 1년간 진행되는 캠페인은 지역 소외계층 아이들이 차별 없는 교육 기회를 제공받고 꿈 앞에 놓인 장애물을 수월히 넘을 수 있도록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대전지역본부와 ㈜유토개발, 충청투데이가 함께 힘을 모아 마련됐다. 충청투데이는 앞으로 월 2회 지면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12명의 '숨은보석' 중 첫 번째 주인공은 산업디자이너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이수진(17·가명) 학생이다. 강렬하고 열정적인 빨간색의 루비를 닮은 수진이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자. <편집자주>

◆자립을 배웠던 어린 시절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처럼 서서히 성장하면서 깊게 뿌리내리는 아이가 있다.

지체장애 3급을 가진 아버지와 지체장애 1급인 어머니의 소중한 첫 딸로 태어난 수진이는 또래보다 조금 늦은 3살 무렵 걸음마를 시작했다. 온전히 스스로 땅을 딛게 되기까지 보통의 경우보다 2배, 3배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면서 여느 아기들처럼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휠체어를 타는 엄마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아빠가 줄 수 있는 도움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달리 울음 끝이 짧아 동네에서는 순한 아이로 불렸다. 아이의 거울이 되기에 현실의 어려움이 있었던 수진이의 부모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딸의 성장통을 지켜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수진이는 서툰 걸음에 길을 걷다 넘어지기 일쑤여도 한결 같이 늘 그 자리에서 지켜보는 부모님의 사랑을 좇아 걷고 또 걸었다. 숱한 과정을 지나 수진이는 스스로 일어나는 법을 일찍이 깨우쳤다.

하지만 아직 어린 수진이가 홀로 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은 이제 17살이 된 수진이가 훌쩍 뛰어넘기 힘든 벽이다. 기초생활수급비와 부모님의 장애수당으로 네 가족이 생활하고 있어 꿈을 위한 투자는 그림의 떡인 것. 산업디자이너가 되고자 준비 중인 미술 관련 대학 입시를 위해서는 실기 준비가 필수적인데 국비와 지자체의 도움으로는 보다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기 버거운 게 현실이다. 수진이의 부모는 이제까지 아이의 소중한 꿈을 지원하며 없는 살림에도 미술과 컴퓨터 학원을 보냈지만, 점차 기초교육을 벗어나다 보니 학원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수진이네 가족에게 '숨은보석찾기'가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왔다.

◆관찰력에서 피어난 꿈

수진이는 관찰력이 뛰어난 아이다. 부모의 장애 탓에 주변을 보다 세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산업디자이너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도 뛰어난 관찰력에서 비롯됐다. 싱크대 보다 낮은 휠체어에 앉아 힘들게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싱크대가 떠올랐다. 시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가 주방과 거실을 오갈 때마다 늘 부딪히던 서랍장은 이동이 편리한 위치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됐다. 당연하게도 집 밖을 나서면 더 많은 장애물과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똑같은 일상도 장애가 있는 수진이의 부모님은 매일이 새로운 도전이다. 수진이는 어려움을 겪는 부모를 보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실내·외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장애인의 눈높이에 맞춰 주변에 도사린 위험 요소를 없애고 예쁜 디자인까지 자랑하는 가구를 만드는 것이 수진이의 꿈이다. 직접 디자인한 가구를 사용하면서 미소 짓는 부모님을 떠올리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만 같다.

◆꿈을 키운 도전정신

올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수진이는 자타공인 '열정걸'이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대다수의 친구들이 꺼려하는 학교 무용부에 선뜻 들어가기도 했다. 사람들 앞에서 서투른 몸짓을 선보여야 한다는 부끄러움보다 이참에 우아한 한 마리 백조가 돼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재단을 통해 후원 받은 피아노도 수진이에게는 유용한 놀잇감이었다. 평소 즐겨보던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배경음악이 마음에 들 때면 스스로 인터넷에서 악보를 찾아다가 연주하곤 했다.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타고난 성향은 수진이의 꿈 여행에 윤활제가 되고 있다. 중학교에서 보낸 3년 동안 파워포인트와 한글 자격증을 취득했고 하교 후에는 곧장 미술학원에 달려가 기초 디자인을 배웠다. 현재는 기본적인 도형이나 손톱깎이, 유리병 등을 그리면서 디자인의 맛보기 과정을 밟는 중이다. 지금부터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 훗날 산업디자이너의 꿈을 이룬다는 포부다.

이수진 학생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매달 5만원 씩 지원받았던 게 배우고 싶은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데 힘이 됐다"면서 "최근 엑셀 시험에서 떨어져 슬펐지만 처음부터 다시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자양분이 된 가정환경

유치원에 들어갈 쯤에는 여섯 살 터울 동생이 태어났다. 수진이는 동생에게 몸이 불편한 부모님 대신 엄마이자 아빠였으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 두 자매는 집 근처를 놀이터 삼아 어린 시절을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꾸몄다. 수진이의 부모는 두 자매에게 끝없는 사랑과 관심을 주면서도 일반 가정과는 다른 형편을 늘 미안해했다. 그러나 어떤 보석에 비할 수 없는 낙천적인 성격을 물려줬다.

바깥 외출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가족이 다 함께 영화를 보거나 보드게임을 하는 시간은 수진이네만의 가정 문화다. 주로 하는 게임은 부루마블과 OX퀴즈다. 네 가족이 둘러앉아 게임을 하다 보면 두런두런 하루의 일을 공유하는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점점 성장하는 두 자매와 부모 간 소통의 비결은 보드게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과 때론 친구처럼 유쾌하게 지내는 가정 분위기 덕분에 수진이는 미래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하고 꿈꿀 수 있었다. 두 자매를 평범하게 키우고 싶었던 부모의 바람처럼, 수진이는 희망이라는 화분에 꿈을 심고 열심히 가꾸는 중이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노력하는 사람은 빛이 난다'는 수진이네 가훈은 일종의 비료이며 지표다.

◆희망의 밑그림, '숨은보석찾기'

산업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수진이는 중리종합사회복지관의 추천으로 '숨은보석찾기' 캠페인에 용기를 내 지원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중요하다는 부모님의 말씀처럼 꿈을 향한 여정에 당찬 첫발을 내디뎌 보기로 결심한 것. 새하얀 도화지를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었으나 이제는 두렵지 않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지역사회의 온기를 품에 안고 희망의 밑그림을 채워나갈 계획이다. 포기하거나 좌절하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긍정의 힘과 함께 수진이만의 빛깔을 아로새긴다는 각오다.

이수진 학생은 "혼자의 힘으로 꿈을 이루기에는 모르는 것이 많아 어렵고 두려웠다"며 "이번 '숨은보석찾기' 캠페인은 세상에 다시 나서는 '제2의 걸음마'다. 제 꿈에 한 발짝 다가가는 기회로 삼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수진이 하편에서 계속

서유빈 기자 syb@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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