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서예이야기 430>

조선조 성종(成宗) 때의 문신(文臣) 서거정(徐居正)이 펴낸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김생(金生)이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친구는 오랜만에 찾아온 김생을 반기며 술과 안주를 차려왔는데 안주라고는 달랑 채소 몇 가지뿐이었다.

친구가 먼저 안주가 변변치 못함을 사과하며 말했다(상방우인가 주인설작 지좌소채 선사왈:嘗訪友人家 主人設酌 只佐蔬菜 先射曰).

“집안 형편도 어렵지만 시장마저 멀다 보니 내놓을 것이라고는 담백한 채소밖에 없네. 이거 오랜만에 왔는데 대접이 너무 소홀해서 미안하네(가빈시원 절무겸미 유담박 시괴이:家貧市遠 絶無兼味 惟淡泊 是愧耳).”

김생도 친구의 살림이 넉넉지 못함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했다.

그런데 김생이 무심코 뜰을 내려다보니 여러 마리의 살찐 닭들이 어지럽게 찾아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적유군계 난탁정제 김왈:適有群鷄 亂啄庭除 金曰).

괘씸한 생각이 든 김생이 한마디 했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친구를 위해 어찌 천금(千金)을 아끼겠는가? 내가 타고 온 말을 잡아서 술안주로 하세(대장부 불석천금 당참오마 좌주:大丈夫 不惜千金 當斬吾馬 佐酒).”

친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한 마리밖에 없는 말을 잡아먹으면 무엇을 타고 간단 말인가(참일마 기하물이환:斬一馬 騎何物而還)?”

김생(金生)이 대답했다.

“그야 자네 집에 있는 닭을 빌려 타고 가면 되지 않겠나?(차계기환:借鷄騎還-닭을 빌려 타고 돌아가다)”

그러자 김생의 말뜻을 알아차린 친구가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닭 한 마리를 잡아서 대접했다(주인대소 살계향지:主人大笑 殺鷄餉之).

김생의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우스갯소리가 옛사람들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닭을 빌려 타고 돌아간다는 말은 손님을 푸대접하는 것에 대한 어려운 집을 빈정거리며 하는 말로 쓰이니 항시 가내 사정을 안다면 깊이 생각하여 가슴에 못 박히는 일들이 없도록 조심조심 말을 해야 한다.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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