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만약 이 세상이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면 정인이에게 세상은 지옥이었을 것이다.

고통과 두려움은 기억의 산물이라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16개월 동안 별다른 기억 없이 상처만 겪었을 정인이에게 이 세상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지옥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아이를 키운 부모라면, 아니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구성원 누구라면 참담한 슬픔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슬픈 현실이지만 슬픔은 비극보다 늘 한걸음 늦게 찾아온다.

안타깝게도 비극을 최소화하려는 우리의 노력 또한 그러하다.

양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정인이 방지법(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했다.

최소한의 법적 장치는 마련된 셈이다.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지만 제2·제3의 정인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가 아니겠는가. 늦었으나 더 늦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의 도리다.

정인이 방지법에 따라 경찰관 등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의료인 등 신고 의무자의 신고를 받으면 즉시 수사 또는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와 함께 민법 개정안 통과로 63년간 존속됐던 자녀 징계권도 사라지게 됐다.

사랑의 매라는 명목으로 자녀에게 매질하는 행위가 이젠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게 됐다.

아동보호의 책무에서 지방정부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서구는 전체 인구 중 아동 인구가 16%를 차지한다.

대전 전체에서 접수되는 아동학대 의심 신고 건수의 40%에 달한다.

지난해 서구는 대전 자치구로는 처음으로 아동보호팀을 신설했다.

아동보호팀은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과 아동보호 전담 요원으로 구성돼 있다.

아동보호팀 전담 공무원은 경찰과 함께 아동학대 조사와 아동에 대한 보호조치 등 조사업무를 전담한다.

또 보호 대상 아동에 대한 보호 계획을 수립해 양육 상황을 점검하고 지원한다.

서구의 발 빠른 조치를 자랑하기는 이르다.

지방정부에 전담팀과 전담 공무원이 배치됐더라도 인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서구 역시 최근 3년간 평균 아동학대 신고 건수가 280.3건으로 전담공무원을 7명 배치해야 하지만 현재는 3명이다. 갈 길이 멀다.

며칠 전 도마동과 정림동의 취약계층을 찾아 안부를 묻고 구호 키트를 전달했다.

코로나19 장기화와 새해 초부터 불어 닥친 한파로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은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 한해도 서구는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살피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끝으로 어른들의 잘못으로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의 명복을 빈다.

만약 저세상이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면, 정인이가 쉴 곳은 당연히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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