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수 대전을지대학교병원 권역외상센터 외과 교수

지난해 늦가을, 여기저기서 연례행사처럼 보도블록 교체 공사가 한창이었다. 2021년 국가 예산안은 558조원이다. 국가 주요기관부터 작은 지자체까지, 원칙에 따라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 것이 정상적인 국가다. 그런데 며칠 전까지 내가 잘 딛고 다녔고, 또 멀쩡해보이던 보도블록이 폐기물이 될 운명으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몇 년은 거뜬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도 파헤쳐진 모습을 보니 씁쓸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와 정반대로, 지난 가을 내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 모습을 보았다.

“저기 헬기 온다!” 당시 옆에 있던 응급의학과 교수님이 먼저 소리쳤다. 병원 옥상 헬리포트에서 헬기로 이송될 중증외상 환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십분 전 지방의료원 응급실선생님과의 통화 내용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7살 아이, OOO, OOO 소견 있습니다. 너무 낮은 혈압 수치. 골절, 또 출혈 소견들….” 여러 출혈과 골절이 있어 심각한 상태였다. 많은 의료진이 모였다. 심각한 상태이기에 하나 된 마음으로 헬리포트에서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기다리고 있었다.

착륙하고 나면 아이를 맞이하고 어떤 상태인지 확인하면서 동시에 일사분란하게 판단, 처치해야 한다. 기도 유지가 잘되며 숨을 잘 쉬고 있는 지, 혈압과 의식은 괜찮은 지 확인해야 한다. 다발성 손상일 경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확인해야 하며, 지나친 저체온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다시 내가 답했다. ‘그렇지, 책에 이렇게 쓰여 있고 나도 스승님께 이렇게 배웠고, 얼마 전 나 또한 전공의 선생, 학생들에게 같은 말을 했었지.’

아이는 양팔에 수액을 달고 여기저기 깁스를 한 채 가만히 누워있었다. 몇 분 후 응급실, 외상소생실에서 X-ray, CT 검사를 통해 부러지고 피가 나는 곳과 골절부위를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앞서 내 스스로에게 묻고 고민하고 답한 것들을 아이 얼굴과 몸 전체를 보며 순서대로 체크했다.

아이는 인공호흡기에 호흡을 맡긴 채 몸에 주렁주렁 달린 굵은 관으로 피와 수액을 맞으며 중환자실에서 일주일을 버텼다. 어려운 수술들을 이겨낸 아이는 일반병실로 옮겼다. 아이와 손 잡고 말을 나누며 24시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하는 아이 어머니의 눈빛을 보며 처음 헬기가 내리던 순간이 떠올랐다.

달력 두 장이 넘어갔을 때쯤 아이는 퇴원을 했다. 권역외상센터가 있는 이곳 병원에서 아버지의 차를 타고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십여 분 동안 헬기로 날아온 길을 이제는 빠르고 신속하게가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드라이브처럼 즐기며 돌아갔을 테다.

나와 같은 외상외과의사는 ‘만약’이라는 가정을 가장 싫어한다. ‘만약 이 환자가 조금 빨리 권역외상센터로 도착하거나, 한 시간 빨리 수술했다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환자가 헬기를 타지 못하고 몇 시간 동안 앰뷸런스를 탔으나 치료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헤맸다면 어땠을까’ 등 이런저런 생각에 아찔하기만 하다.

2021년 국가 예산중에서 보건복지부, 그 중 중증외상환자를 한명이라도 더 살리는 데 쓰이는 권역외상센터 예산은 631억원이다. 사람 목숨은 돈으로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고귀하다. 하지만 국가 예산이 적소에 바람직하게 사용되고 집행될 경우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세금이 잘 쓰인다면, 돈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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