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우리 국민은 지난 1년 넘게 검찰개혁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을 관전해 왔습니다. '추미애 대 윤석열' 또는 '문재인 대 윤석열'의 구도로 전개돼 온 이 싸움을 심각하게 지켜본 분들껜 죄송합니다만, 전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어떤 일에 몰입하다보면 큰 그림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른바 '낯설게 보기'나 '거리 두기'를 통해 이 싸움의 큰 줄거리를 복기해보면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혹 불쾌하시더라도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들어봐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쪽을 지지하건, 이 싸움의 본질에 대한 오해를 해소함으로써 국민적 화합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이니 말입니다.

"한 줌도 안되는 부패한 무리의 더러운 공작", "일부 똘마니들을 규합해 장관을 성토", "조폭 검사들의 쿠데타", "공수처 수사대상 1호",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윤서방파'의 몰락은 시간문제", "동네 양아치들 상대하며 배웠는지 '낯짝'이 철판", "윤석열은 대역죄인,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 몰라", "그게 깡패지 검사냐"

이 화려한 막말들은 윤 검찰총장을 겨냥한 여권 의원들의 말씀입니다. 문 정권의 열성 지지자들이 토해낸 댓글들엔 차마 이 지면에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극렬한 욕설이 많았습니다. 이 정도면 '윤석열 악마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이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시간여행을 떠나 보시지요.

문 대통령이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한 법 집행"을 당부한 건 2019년 7월 25일이었습니다. 민주당은 윤 총장 인사 청문회 당시 "검찰을 이끌 적임자"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 검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변곡점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전격 이뤄진 8월 27일 오후였습니다. 문 정권 사람들은 이를 '검찰 쿠데타'로 규정했고, 그 이후 벌어진 일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쿠데타는 정권을 잡기 위해 하는 일인데, '검찰 쿠데타'는 무엇을 노린 걸까요? 검찰개혁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나요? 그렇다면 문 정권은 '인사 실패' 아니 '인사 참사'를 저질렀다는 걸 실토한 게 아닌가요? 혹 윤 총장에게 엉뚱한 기대를 했던 건 아닐까요? 윤 총장 임명 당시 문 정권 지지자들이 "개자당(현 국민의힘) 너네들, 다 죽었다"고 환호했던 걸 상기해보세요. 과장되고 그릇된 환호일망정 그게 문 정권의 진심 아니었나요?

문 정권은 처음에 윤 총장에게 따라붙었던 '칼잡이'라는 별명을 반겼을 겁니다. 오로지 '앞으로 진격' 밖에 모르는 칼잡이라니,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당시 송호근 포스텍 교수가 <최종병기, 그가 왔다>([중앙일보], 2019년 6월 24일)는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윤 총장은 "국정농단, 사법농단 잔재세력의 완전 소탕"을 해낼 수 있는 "적폐청산의 최종병기"로 선택된 게 아니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문 정권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습니다.

지난해 2월 강철원 한국일보 기획취재부장이 "윤석열 스타일은 바뀌지 않는다"는 제목의 인상적인 칼럼을 썼습니다. 검찰 안팎에 널리 알려진 '윤석열 스타일'은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설정한 뒤 결론을 정해 놓고 수사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수사한다", "목표에만 집착해 절차를 무시하고 인권을 등한시한다", "수사의 고수들이 깨닫는 절제의 미덕을 찾아볼 수 없다" 등이었다고 합니다.

세평이라는 게 누구한테 묻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다 믿을 건 아닙니다. 이런 세평에 대해 윤 총장이 억울하다며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문 정권도 그런 세평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강 부장이 칼럼을 통해 하고자 한 말도 이런 것입니다. "윤석열 스타일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청와대와 민주당을 속이지도 않았다. 조국과 유재수를 수사하고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들춰낸 건 자기 스타일대로 간 것이다. 스타일을 지적하지 않고 사람을 믿은 정권이 순진했을 뿐이다."

순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불순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 같습니다. 문 정권의 입장에선 그런 스타일이 적폐청산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거라는 점에서 말입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셈이지요. 불순함을 그 정도에서 끝내고, 합리적인 출구 전략을 찾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문 정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의 칼끝이 '구 적폐' 뿐만 아니라 문 정권의 '신 적폐'를 향하자 이성을 잃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윤석열 악마화'라는 더욱 불순한 전략을 택하고 말았지요. 어느 여당 의원이 "대통령을 지키는 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해괴한 주장까지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문 정권 사람들이 윤석열에 대한 배신감과 더불어 자신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리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감히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의 어리석음을 탓할 순 없으니, 자신들이 바보가 아니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선 '희대의 악마'라는 프레임이 필요했겠지요. '희대의 악마'는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는 걸 강조할 수 있는 좋은 카드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었습니다. 문 정권은 무리한 '윤석열 죽이기'의 과정에서 자신들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내로남불을 밥 먹듯이 저지르면서 위선과 기만으로 여겨질 수 있는 모습을 질리도록 보여주고 말았습니다. 다수 국민은 문 정권의 그런 치졸한 모습에 염증과 환멸을 느꼈던 게 아닐까요?

과오를 덮기 위해 더 큰 과오를 저지르는 건 좋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위선과 기만이 자꾸 누적되면 국민의 인내심도 고갈되기 마련이지요. 민주주의 원칙에도 부합되지 않습니다. 문 정권이 뒤늦게나마 이제라도 이성을 회복해 '윤석열 악마화'의 함정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않으면 민심은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이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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