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대한건축사협회 대전시회장

새해 첫 날, 소복하게 내리는 눈발의 향연이 마치 지난 2020년의 고단함으로 지친 세상을 하얀 캔버스로 새롭게 덮어주며 새로운 출발의 획을 그으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코로나로 인해 한적하게 비워진 공용주차장 입구의 비탈진 경사로는 아이들의 눈썰매장으로 변신하여 연신 오르내리며 깔깔대는 웃음소리로 가득하여 코로나로 인해 메말랐던 공동체의 정감을 오랜만에 느끼게 한다.

시간과 삶은 연속적인 것이어서 딱 끊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도시와 건축도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점진적으로 발전과 쇠퇴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작심삼일일지언정 새해를 맞이하며 다짐하거나 바라는 개개인의 소망과 관점이 항상 있듯이, 건축인으로서의 바램도 떠오르기에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예전에 설계를 잘 한다는 것을 디자인 능력을 위주로 판단했다면, 최근에는 각종 법규를 잘 숙지하여 법망의 테두리 안에서 최고의 효율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뀐듯하다. 그만큼 건축 관련 법령이 다양하고 혼란스럽다는 뜻이다. 개별 필지에 적용하는 용적률을 예로 들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로 용도지역을 구분하여 용적률을 제한하고, 지자체 조례에서 또 다시 정의하고 있다. 그런 후 지구단위계획으로 더 축소되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한다. 이럴거면 애당초 건축법이나 조례 등에서 그 내용들을 단순화했어야 한다. 새해에는 건축관련 법체계를 적용하기 쉽게 정비하고 적용은 엄격하게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조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년에 각종 부동산 관련 법안의 강화 이후, 오히려 주택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대전 역시 최고로 급등한 지역이 되었다. 청년층과 빈곤층의 주거 약자들의 입장이 더욱 곤란해지자 호텔이나 사무공간을 주거화하겠다는 정부의 대책 없는 대책이 발표되기도 했었다. 용적률을 강화하고 층수를 제한하여 도시의 밀도를 낮추어 주거공급을 제한하면서 주거로는 부적합한 시설들을 주거화하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대책은 서둘러 철수하고 밀도 높은 도시, 공공시설과 녹지가 제대로 살아있는 도시를 위한 정책이 수립되었으면 한다. 최근 서울시는 2014년도부터 규제하고 있는 주거시설의 최고층수 35층의 제약 조건을 공공기관이 공동시행사로 나서는 공공재건축의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와 층수 규제를 풀어주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즉 낮은 밀도로 인한 주거의 빈곤이 더 심해지고 있다는 근거이다. 대전시는 서울시의 고민거리인 주거시설 최고층수 35층을 도입하고자 하는 시점이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또한 공공건축이 좋은 건축을 선도하는 법안들이 만들어졌듯이 수준 높은 민간건축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정책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부실한 기획과 전문인력과 전담 조직의 부족 등 행정의 변화가 필요한 부분과 민간건축에 대한 용역대가의 현실화를 통해 제대로 된 기획과 설계업무의 회복 또한 필요하다.

허무하게 흩날리던 눈발 같은 바람이 아닌, 지저분한 세상을 하얗게 덮은 캔버스 같은 바람이 되길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