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교진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 최교진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 최교진 세종특별자치시교육감.

예전에 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 점심시간은 빈부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시간이었습니다. 도시락에 달걀 프라이를 덮어갈 수 있었던 집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침마다 도시락 반찬은 고민거리였습니다.

부모의 경제적 차이로 아이들이 먹는 것이 차이가 나고, 결국 발육과 건강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당연히 학력격차로 이어집니다. 가난의 대물림이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것이지요.

이것을 나라에서 책임지기 시작한 것이 학교급식입니다. 처음에는 급식비를 받았습니다.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밥을 먹지 못하는 학생이 나타났습니다. 무상급식이 도입되고 나서야 모든 학생들의 먹을 권리를 지켜주게 되었습니다.

교육은 인권입니다. 헌법이 정해놓은 기본권입니다. 학생이 제대로 교육받기 위해서는 학생의 삶이 평온해야 합니다. 학생 주변의 생활 여건이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를 제약한다면 국가는 이 어려움을 보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교육복지’이고 ‘온종일 돌봄’입니다.

지난해 2월 들이닥친 코로나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고,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모든 가정에서 학생 돌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면수업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학습결손이 나타났습니다. 학생과 교사, 학생과 학생 사이의 교류가 끊어지면서 학생의 생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코로나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그동안 학교가 했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는 유명강사의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할 수 없는 교사와 학생의 만남 속에서 이뤄지는 교육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학교는 교수학습뿐 아니라 돌보고 보살피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었습니다. 밥을 먹이고, 상담하고, 돌봐주는 일이 학교의 중요한 역할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달은 것은 어렵더라도 학교의 문은 열어야 하고, 학교는 사설학원과 달리 학생의 삶 전체를 책임지는, 가르치고 보살피는 교수학습과 교육복지의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온전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학교에는 교육복지사가 있어야 합니다. 교사와 협력해서 혹시라도 어려운 학생이 없는지 살펴서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학교에는 전문상담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학생이 공부에 힘들어하는 심리적 요인을 살펴야 합니다. 훼손된 관계가 있다면 복원하고, 마음속에 어두움이 있다면 환하게 밝혀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학교에는 사서교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과서 밖에서 지식을 캐어내는 습관을 기르고 방법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서교사가 필요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것이 있어야 온전한 학교가 됩니다.

학교가 책상과 걸상, 그리고 칠판만 있으면 운영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있는 집 자식들’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사교육에서 메울 수 있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배움에서 차별을 받게 됩니다. 교육격차가 빈부의 대물림을 낳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일각 -기재부와 감사원- 에서는 ‘학생 수가 줄었으니 교사 수도 줄이고, 교육예산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세수 감소를 이유로 교육예산을 줄였습니다. 전국적으로 교사 숫자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 가르칠 교사를 줄이고 있는 형국입니다.

코로나를 겪으며 알게 된 학교의 역할, 우리 아이들의 삶을 지키고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재정을 늘려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교육비를 아껴 다른 무엇에 쓰겠습니까? 그래야 나라다운 나라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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