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구세군 충청지방 공보담당관

▲ 김기석 구세군 충청지방 공보담당관.

복지를 생각 할 때 복지가 필요한 이들을 먼저 떠올려보게 된다. 소위 소외된 이웃으로 일컬어지는 생활보호 대상자나 차상위 계층만 복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이하 코로나)로 모두의 건강만큼이나 보편적 복지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지금, 과연 나눔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복지를 실현할 키가 되는지 주목해 본다.

재화의 문제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 본다. 물론 물질의 많고 적음이 행복의 절대 조건은 아니겠으나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재화만큼이나 필연적인 요소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화는 무한정 득하거나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먼저해 본다. 물론 그렇지가 않다. 재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원재료, 인력, 부차적인 에너지원이 필요할 터인데 모두가 무한정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화를 가지지 못함에서 오는 상대적 상실감을 어떻게 만족으로 바꿀 수 있을까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답은 등가의 가치를 나눔이라는 거래 수단을 통해 맞바꿈으로 그 해결점을 제시한다. 방법은 의외로 쉽다. 재화를 가진 자는 가진 재화를 나누고 만족이라는 가치를 득함으로, 재화가 필요한 이에게는 진정한 감사를 나누고 필요한 재화를 득함으로 모두가 만족을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가치에 등가를 매겨 거래하게 함으로써 유·무형의 재화를 나누게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행복을 최종 목표로 하는 진정한 복지의 실현 방법이 아닐까?

구세군은 ‘세상 가장 낮은 곳과 함께하는 따뜻한 나눔’을 모토로 지난 100년간 사회적 약자를 돌봐 왔다. 사회복지시설을 통해, 혹은 교회를 통해, 혹은 자선냄비로 대표되는 나눔 툴을 통해 나누기를 멈추지 않았다. 비록 후발로 생긴 여러 NGO단체들이 그 규모에 있어서는 앞서가고 있으나 구세군은 나눔의 가치의 순수성만큼은 지켜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그 힘겨운 노력을 사회적 신뢰라는 찬사로 보상 받고 있다.

작금에 코로나라는 감염 병으로 국민들의 일상 활동이 재한을 받고 심리적으로도 위축 된 것이 사실이다. 거리의 자선냄비가 썰렁하다는 기사로 뉴스포털이 도배될 정도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가히 짐작해 본다.

필자가 봉사하는 충남 논산의 자선냄비도 아직 공식적인 집계(12월 24일 이후)가 끝나지 않았으나 전년대비 40% 이상 모금액수가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구세군에서는 거리에서 다 채워지지 않은 모금액을 구세군 교회에 도움을 청해 자발적인 참여를 요청할 것이고 최악의 상황에는 구세군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처분해서라도 취약계층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 방법을 우리 안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사회와 더 긴밀한 소통을 통해서 문제의 해결방법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구세군은 취약계층의 필요를 진정성을 담아 사회에 알리고 사회는 그 진정성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나눔의 분량만큼 취약계층과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다. 그 뜻을 누구를 위해 또 어떻게 알리고 소통하며 공감 해 가는가 하는 것 또한 아름다운 나눔의 한 과정이 아닐까? 그 옛날(1928년 우리나라에서 자선냄비가 처음 시작 한 해) 자선냄비로 모아진 848환으로 일제강점기 배를 곯아야 했던 이들에게 쌀과 땔감이 되어주고 전쟁고아들에게 잠자리가 되어주고 책이 되어 주었던 것처럼. 외환위기로 실직한 이들에게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는 그 안에 무안한 가치가 내재되 있고 그 가치를 나눔이라는 거래 수단으로 서로의 필요를 채워 왔으며 오늘날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왔던 것처럼 말이다. 자 이제 다시 이야기를 시작 할 때가 됐다. 진정성을 담아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러므로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나눔을 통해 사회가 함께 극복해 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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