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 충청남도 소방본부장

지난 10월 늦은 밤, 국민 모두를 불안에 떨게 한 뉴스속보가 전해졌다. 울산의 한 아파트 전체가 화염에 휩싸인 영상이었다. 3년 전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런던 그렌펠타워의 화재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다행히도 울산 아파트 화재는 사망자 없이 진압됐다. 그러던 12월의 첫날, 경기도 군포시의 25층 아파트에서도 불이 났다. 불은 아파트 12층에서 시작되어 결국 4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치는 안타까운 피해를 남기고 진압됐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아파트 화재는 전국 평균 약 3천 건이 매년 발생하고 있다. 충남도에서도 최근 3년 동안 총 223건(평균 74건)이 발생했다. 아파트 화재의 원인은 다양하다. 전기적 요인부터 불씨 취급 부주의, 주차된 차량화재로 인한 연소확대, 리모델링 공사 등이 최근 화재사례에서 원인으로 밝혀졌다. 어떠한 원인이든 화재가 시작되면 중요한 것은 연소확대와 초기대응이다.

울산 아파트 화재의 경우 최초 발화는 3층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확대됐다. 당일 울산은 강풍주의보가 발령된 시점에다 건축물 외장재였던 알루미늄 복합패널을 매개로 연소 확대가 더욱 급격히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외장재 내부의 폴리에틸렌이 불에 빠르게 타면서 형성된 공간을 따라 급속히 화염이 건물 전체로 확대된 것이다.

울산 화재에서 빛났던 것은 초기대응이다. 강풍주의보까지 발령된 상태로 연소확대가 급격히 이루어져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주민들의 초기대응은 신속했다. 화재 초기 신속한 상황전파와 대피가 인명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평소 관계자와 입주민의 교육상태, 의식수준 등이 얼마나 숙련되어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 사례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도 제도개선과 함께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다. 정부는 지난 8년에 걸쳐 건축물 외장재의 불연화를 위해 건축법 개정을 추진했고 지난 2018년 3층 이상 건축물에는 가연성 외장재를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했다. 또한 피난안전구역과 대피공간 등 고층건축물의 피난시설 강화에 힘쓰는 등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소방에서도 부산 해운대구 고층아파트 화재 이후 2012년 '초고층재난관리법'을 제정했고, 소방시설법 개정과 고층건축물 화재안전기준을 제정해 소방시설의 기준을 강화해 왔다.

또한 충남소방본부는 자체적으로 고층아파트 화재에 신속한 대응을 위해 출동로 개선사업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그 결과 소방차 진입이 곤란했던 도내 162개 단지 아파트 중 152개소(94%)가 규제봉 설치, 도로 확장, 구조물 제거 등의 조치를 통해 출동로가 확보됐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70m 고가사다리차와 같은 필수장비의 보급, 실전과 같은 훈련, 맞춤형 제도개선 등 관 주도의 정책추진과 울산 화재에서 활약해준 주민들과 같은 안전의식이 조화되어 발전해 나간다면, 올라가는 아파트의 높이만큼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할 권리도 높아질 것이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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