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재 대전보건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오헨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이 있다. 성탄절날 사랑하는 남편에게 선물할 형편이 못 되는 여자 주인공이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아내는 긴 머리카락을 잘라 시계줄을 산다. 남편이 건네 준 선물 상자 속에는 아내를 위한 예쁜 머리핀이 있었다. 시계를 팔아 마련한 것이다. 이렇게 되고 보니 시계줄도 머리빗도 둘 다 쓸모없게 되어버렸다. 아내의 머리카락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길게 자라게 될 것이니까 남편이 머리빗을 반납하고 그 돈으로 시계를 되찾아 올 수는 없을까?

민법에 착오론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법률행위 중 중요한 부분에 착오가 있다면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값비싼 외제 중고자동차가 시세보다 싸게 나와서 구매 후 신나게 타고 다니다 세차할 때 보니 조수석 바닥에 번개탄 피운 흔적이 있으면 자살사고 차량으로 볼 수 있다. 딜러에게 자동차를 반납하고 차값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이경우 자동차 딜러가 사고 차량임을 알고 팔았다고 하면 문제가 간단해진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남편이 아내가 긴 머리를 자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머리빗 가게 주인에게 설명하지 않았고, 손님이 왜 머리빗을 사는지 가게 주인이 알필요까지 없기 때문에 주인이 순순히 환불해 주지 않는다면 돌려받기 어려울 것 같다. 남편은 아내가 머리카락을 자를 거라는 걸 미처 몰랐지만 몰라서 못한 것도 본인 과실이 되는 셈이다.

크리스마스 선물 특수를 겨냥한 일부 기업에서는 두 주인공을 허영심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묘사하며 이번 성탄절엔 머리카락 자르지 말고, 시계도 팔지 말고 싼값에 마련할 수 있는 언택트 시대에 걸맞은 자기 회사 상품을 팔아 달라고 호소하는 기막힌 상술을 발휘한다.

현대과학에서 널리 사용되는 수치 해석학을 결혼 생활에 대입해보자.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루트 2의 근삿값을 구한 데서 보듯, 오늘날 수치해석은 정확한 해를 구하는 것보다는 합리적 수준의 오차를 갖는 근삿값을 구하는 것이 목적인 때가 있다. 코로나 유행 초기에는 코로나 정도는 과학의 힘으로 쉽게 물리치리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채 일 년이 안 지났지만 지금은 온 세상이 전시상황으로 바뀌었다. 모두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척하며 살아갈 뿐이다. 인간이 불행으로 느끼는 것 중 대부분은 돈이 있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한다. 어느 재벌을 붙들고 물어봐도 사업상 어려울 때 돈이 조금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할 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다고 한다. 결혼생활에서 부부가 싸울 수는 있는데 돈 가지고 싸우면 실패한 거고 마당에 어떤 색깔 장미꽃을 심을 건지를 놓고 싸우면 성공한 거라고 한다. 따뜻한 사랑과 그 사랑 속에 내면의 성장을 지켜보며 지금 같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돈이 부족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의 풍요로운 인생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이번 성탄절 맞이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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