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 대전을지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분노가 끓어오른다.

분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끝없이 치솟아 오른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분노를 삭인다는 것은 비굴한 겁쟁이의 삶을 사는 겉 같아 두렵다.

대한민국은 동시에 분노공화국인가 보다.

얼마 전 딸의 사생대회 출품작이 제대로 배송되지 않았다고 해서 승용차를 몰고 편의점을 부순 사례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새마을금고 전직 임원이 현 직원을 찔러 죽이고 스스로는 음독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홧김에 일을 저지른다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진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꾹꾹 쟁여놓은 분노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곤 한다.

자신들이 원래 화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이런저런 식으로 무시당하고, 힘있고 무신경한 사람들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폭발하는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호소한다.

매스컴에서는 흔히 이를 ‘분노조절장애’라고 칭한다. 환자분들 역시 “분노조절장애가 아닌가 해서 왔어요”라고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엄밀히 말하면 분노조절장애란 공식화된 진단명은 아니다.

분노조절장애와 가장 가까운 개념은 간헐적 폭발성 장애다.

사소한 자극에 걸맞지 않을 정도의 분노를 충동적으로 표출시키며 행위 후에는 창피하고 후회하는 양상을 보이는 상태이다.

실상 이에 부합하는 환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양상은 오히려 외상 후 격분장애(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에 가깝다.

이는 정신적 고통이나 충격 후에 부당함, 모멸감, 좌절감, 무력감 등이 해소되지 않는 심리적 부적응이라고 정의된다.

분노와 격분은 좀 다르다. 누구나 부정적 상황에 직면해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그러나 영어로 ‘embitterment’인 격분은 분노를 건강하게 표현하지 못하면서 악의에 찬 마음을 내면에 오랫동안 품고 지낸다는 뜻이다.

격분은 자신이 지닌 기본적인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을 반복해서 참아야만 할 때 발생한다.

기본적 가치관이란 선과 악의 구분이기도 하며, 감내해야 하는 일과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의 구분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개개인의 가치관들이 격하게 충돌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사실 분노는 슬픔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사회라는 얼굴 없는 적과 투쟁하면서 무기력한 내 모습을 바라볼 때 먼저 느껴지는 것은 슬픔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에게 슬픔을 허락하지 않는다. 슬픔을 느끼는 것은 지는 것이라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 대신 분노를 느끼며 그 단계가 넘어가면 우울에 빠져버린다.

우리가 슬퍼한다고 해서 겁쟁이가 되는 것은 아님을 인식할 수 있다면 분노와 우울이라는 양 극단으로 치우치진 않을 것이다.

인도 출신의 정치평론가인 판카지 미슈라는 이 시대를 분노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서구 문물의 도입으로 개인주의, 물질주의가 만연하면서 우리는 심적, 영적 가치관을 잃었고 물질적 성공에 집착하게 됐다.

인간의 보편적인 슬픔은 망각하고 자신의 성공을 가로막는 모든 이들을 적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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