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세종시교육청 장학사

▲ 김수현 세종시교육청 장학사

속도가 행복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도 있었다. 규격화된 틀 안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많은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우수하다’라고 평가했다. 그것은 곧 속도의 문제였다. 근대에서 현대까지, 많은 것들이 속도와 비례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평가와 시험은 속도를 전제로 해서 실시되어 왔기에 속도를 따라가는 양상에 따라 자신의 가치가 등급 매겨지고, 그것을 기반으로 삶의 질도 달라진다고 생각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속도는 곧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숨 가쁘게 달려오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나는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던지는 그때가 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20년 동안 중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면서 수많은 학생의 자소서를 지도했다. 학생의 생기부를 분석하고 그것을 자소서로 풀어내는 과정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어 한명 한명 맞춤형으로 지도했기에 고단했지만 그만큼 결과도 좋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으며 그것이 고스란히 자소서에 드러나 있었다는 점이다. ‘우수하다’라고 평가받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무엇이라도 즐겁게 마음을 붙이고 의미 있게 여기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아이는 자기 존재감을 당당하게 뽐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학업중단 업무를 담당하는 전문직으로 발령받아 한동안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렸다. 일이 많고 고된,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 아이들인데,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그 수가 점점 늘고 있음에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학교가 존재하는 것은 학생이 있기 때문인데,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학교 밖에서도 배움의 기회가 열려 있는 요즘, 어찌 보면 학교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의 선택도 존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학교에서 머물던 나날만큼은 행복한 기억으로 남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공교육의 책무성 아닐까?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인 ‘나’는 학교에서 퇴학당한 소년이다. 그는 드넓은 호밀밭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놀며 내달리다가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잡아주며 지켜주는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소설의 이 멋진 장면처럼,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대로 뛰고 달리면서 행복하게 성장해 간다. 때로는 지쳐 멈출 수도 있지만 이내 다시 뛸 수 있는 힘이 아이들에게는 있기에, 그들이 마음껏 자신의 이야기를 학교에서 펼쳐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주고 도와주는 파수꾼이 필요한 것이다. 학급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피는 담임선생님, 아이들의 고민을 보듬어주는 상담선생님,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학업중단 숙려제를 운영하는 선생님, 학교 내 대안교실을 통해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습 경험을 제공해 주는 선생님 들이 바로 학교 현장에 계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 수 있다.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은 학업중단의 위기를 겪고 있는 학생들이 안정적으로 대안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공립 대안교육 위탁교육기관(Wee스쿨)을 설립하고 있다. 잠시 성장통으로 힘겨운 아이들이 더디 가더라도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따뜻하게 기다려 주는 교육의 장을 준비하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 마음의 뿌리를 튼튼히 내릴 수 있도록, 그래서 모두 함께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넉넉히 보듬어 줄 수 있는 세종교육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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