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규 대전시 시민공동체국장

▲ 이성규 대전시 시민공동체국장

1948년 12월 10일은 유엔총회에서 세계 인권선언이 채택된 날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추축국이 벌인 인권 유린 행위가 밝혀졌고, 다시는 이런 끔찍한 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도덕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 세계 인권선언이 만들어졌다. 인권선언은 차별 금지, 생명과 신체의 자유, 노예제도 금지 등 오늘날에는 당연시되는 인간의 권리들을 최초로 명시한 기념비적 문건이다.

1950년 유엔은 12월 10일을 세계 인권의 날로 제정했고, 유엔 가입 국가들은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인권의 날을 맞이해 내 주변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인권’이란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 국가가 나서서 지켜줘야 할 것, 시민단체가 할 일을 떠올릴 것이다. 사실 그렇지 않다. 사람사이에 관계가 형성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지켜야 할 규칙이 생긴다. 인권은 거기서 시작된다. 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 사이에 있다.

‘갑질’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가 유행한다는 건 사회에 갑질이 만연하다는 뜻이다. 대한항공 086편 회항사건을 보자. 이 사건이 승무원의 인권을 유린한 것을 넘어 승객들의 안전까지 위협한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가해자가 갑질을 한 줄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부하에게 막말을 하는 상사, 아르바이트생에게 폭언을 하는 진상 손님은 자신이 갑질을 했다는 걸 알까? 잡코리아가 직장인 60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 중 88.6%는 직장생활 중에 갑질을 당해 봤다고 답했다. 반면 ‘본인이 갑질을 해봤느냐’라는 질문에는 33.3%만 ‘그렇다’고 답했다. 당한 사람은 많은데 가한 사람은 얼마 없는 이 조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혹시 갑질이란 생각도 못한 채 자연스럽게 갑질을 한 것은 아닐까? 을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걸 갑이 인식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인권은 평등해야 한다. ‘평등이 무슨 뜻인가?’란 질문을 받는다면 대부분 ‘똑같이 대우해주는 것’이라 답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같은 것은 같게 대우해야 한다. 여자와 남자의 능력은 같기 때문에 다른 대우를 받아선 안 된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생각해 보자. 그 아이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한국 아이들과 함께 자라날 것이다. 한국 아이들과 다른 대우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물론 같게 대우하는 것만이 평등은 아니다. 같게 대우하는 것이 차별이 될 수도 있다. 걷지 못하는 장애인과 건강한 사람이 같은 선상에서 달리기를 한다면 공평하다 할 수 있겠는가?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해야 평등이다. 장애, 경제적 격차 등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면 법적·제도적 지원을 해서 조건을 같게 만들어줘야 한다.

이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같음의 범주를 넓히자. 완벽하게 같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각자 다른 기준을 가지고 같음과 다름을 구분한다. 그 협소한 기준으로 나와 같은 사람과 다른 사람을 나누고,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한다. 같음의 범주를 ‘나’라는 개인으로 좁힌다면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으로 넓힌다면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아진다. 나와 같은 사람을 차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내가 존중받아야 하듯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다는 인식에서 시작되는 것 그것이 인권이다. 바로 그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 인권선언이 만들어졌다. 72년이 지난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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