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엄지 양옆에 도드라진 살이 눈에 걸린다. 어느 틈엔가 생긴 굳은살이다. 거칠고 메마른 손에 보습 크림과 오일을 수시로 발라보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살은 여기저기 스치다 종국엔 거스러미가 된다. 돋보기를 쓰고 제거하지만, 손톱 주변이 쥐 파먹은 듯하다. 그러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 나의 손을 만져본 사람은 한결같이 '집안일을 많이 하느냐'는 질문이다. 돌아보니 깔끔을 떠는 성격이 한몫하는 것 같다.

정리벽이 남긴 굳은살이다. 열심히 일하는 손이 예쁘고, 놀고 있는 게으른 손은 밉다는 말과 '죽으면 흔적 없이 사라질 몸인데 무얼 아끼느냐'는 당신의 말씀이 정신을 움직인 결과이다. 집안에 살림을 늘어놓는 걸 보지 못하던 아버지 성품 덕분이다. 창고에 연장과 장롱 안 이불이 언제 봐도 자로 잰 듯 정리되어 있다. 집 안 구석구석에 먼지가 없고, 살림이 흐트러진 적이 없었다. 당신의 정리 습관이 때론 식구들을 숨이 막히게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유년 시절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것도 아버지의 정리벽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지금 보니 내가 당신의 성품을 빼닮은 것이다. 평일에는 직장을 나가니 증상이 심하지 않지만, 주말에 시간적 여유라도 있으면, 정리정돈에 매달리니 손발이 고생하는 격이다. 오죽하면, 지인이 모델하우스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겠는가. 나에겐 듣기 좋은 소리이나 식구에겐 공감이 가지 않을 말이다. 식구들이 어질러 놓은 걸 치우라고 성화니 좋을 리가 없다. 그것도 옛말이다. 이제는 단둘이 머무니 남편도 덩달아 부지런하다.

어찌 보면, 손의 굳은살은 열정의 흔적이 아닐까 싶다. 열정이 타고 남은 삶의 부산물이다. 굳은살의 원인은 애지중지하는 정원 가꾸기 비중이 크리라. 아무래도 식물에 보상을 원해야 할 듯싶다. 토종 꽃과 나무를 키우며 몸을 사리지 않아서다. 아니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누구 탓을 하랴. 농부가 논과 밭에서 결실을 얻듯, 정원에서 향기로운 꽃과 나무를 즐기고 있잖은가. 자연을 누리며 정신적 충만의 대가라면, 얼마든 감수하리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붙는 것이 어디 굳은살뿐이랴. 몸 안 구석구석 군살이 늘고, 문장에는 군더더기가 붙는다. 방심한 틈을 타 군살이 붙기 시작하면, 몸 관리가 필요하다는 증거다. 문장 또한, 부단한 훈련이 필요하다. 매일 짧은 글이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문맥의 흐름을 잃는다. 대상을 설명하느라 문장이 늘어진다. 서술과 묘사, 조화의 묘를 잃을 땐 수없이 퇴고하여 군더더기를 덜어내야만 한다.

모든 군더더기 앞에서 숙연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손톱의 굳은살은 내가 열심히 살았다는 생의 흔적이다. 살림의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일도 간소한 생활의 실천이자 내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이니 멈출 수가 없다.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퇴고 또한, 작가의 제일 큰 업이지 않던가. 오늘은 나의 몸을 이끄느라 온갖 고생을 한 발뒤꿈치에 박인 굳은살도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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