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극연기의 정수를 보여준 찰리 채플린(1889-1977)

1958년 개봉한 영화, 권영순 감독의 '오부자'는 본격 희극영화의 출발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개성이 강한 네 아들이 이런저런 사연 끝에 각기 신부감을 맞아 합동결혼식을 올린다는 단순한 줄거리인데 아버지 역 이종철을 비롯하여 양훈, 양석천, 김희갑, 구봉서라는 걸출한 희극인들이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다. 6.25 이후 회복기, 궁핍했던 정서를 훈훈하게 어루만진 이 영화를 계기로 1960년대에는 희극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러는 사이 텔레비전이 본격 보급되면서 코미디 중심은 TV로 옮겨와 안방극장 웃음의 진원지가 되었다.

구봉서 서영춘 배삼룡 이기동 남철 남성남 송해 박시명 임희춘 백금녀 남보원 이주일 백남봉 한무 이대성 등 숱한 희극인들이 방송을 통하여 보급한 대사며 동작은 시대의 유행이 되기도 하였다. 그 후 젊은 연령대의 개그맨, 개그우먼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종전 코미디 프로그램 대부분이 폐지되었고 웃음의 무게중심은 개그로 옮겨왔다. 몇 년 전부터 이 개그 역시 대중의 관심권에서 서서히 멀어지더니 이즈음은 이른바 관찰예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정치권을 비롯한 권력, 부유층의 행태가 코미디 그 자체인데 더 웃기는 대본을 쓰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 섞인 코멘트가 들려온다.

코미디나 개그, 또는 나름 인기를 모았던 만담을 막론하고 웃음을 주는 대중예술이 크게 번창 했으면 한다. 인간의 교만과 이중성 그리고 가진 자, 권력자의 위선과 탐욕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뼈있는 골계와 해학으로 대중의 상실감을 위로하는 희극인들이 많이 출현하여 인기를 끌면 좋겠다. 웃음이 사라지고 코미디언과 개그맨들이 설자리가 좁아지는 환경은 건전성을 잃어가는 사회의 징표가 아닌가 싶다.

얼마 전 아쉽게 세상을 떠난 박지선 씨 같은 재능 있고 의식 있는 희극인들이 마음껏 기량을 뽐낼 그런 사회분위기는 아직 멀었을까. 한바탕 물색없이 웃고 난 다음 뭔가 코끝이 찡해오는 페이소스를 안겨주는 재능있는 희극인들을 제대로 육성하는 시스템 역시 문화사회로 나아가는 관건일 듯 싶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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