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정성훈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코로나와 독감이 겹치는 이중 팬데믹을 사전에 막기 위해 정부는 예년에 비해 독감 예방접종 시기를 앞당겼고 무료 접종의 대상을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예정을 앞당겨 서둘렀던 탓인지 백신이 상온에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고 백신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었다는 등의 잡음이 이어졌다.

이후 영아가 신경 마비가 되었다거나 두통, 메스꺼움이 흔해졌다는 등 이상 반응 보고가 이어졌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추가 안전 점검 때문에 접종 일정이 늦춰지면 독감 예방의 적정 시기를 놓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을 뿐,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은 서둘러 주사를 맞기 위해 병원에 몰려들었다.

문제가 터진 것은 지난달 14일 무료 접종을 받은 인천의 한 고교생이 이틀 만에 사망한 후부터다.

기저 증상도 없었고 지병이 있을 나이도 아니었에 언론은 예방접종이 원인일 가능성을 부각시켰다.

독감 주사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 장작불처럼 번져갔다.

백신을 유통하는 제약회사의 실명이 노출됐고 모 국회의원은 애초에 백신 제조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사건 이후 백신 접종 후 사망 사례가 매일 10여 건 씩 늘어났으며 이후 약 일주일 동안 백 명 가까운 사례가 급격하게 발생한 것으로 보도됐다.

지난달 24일 정은경 질병청장이 사망자 통계는 예방접종과 관련 없다고 못을 박았지만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분위기가 다시 역전된 것은 지난달 27일, 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됐던 인천 학생의 사인이 독극물 중독에 의한 것이며 본인이 며칠 전에 독극물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발표된 후였다.

이후 언론은 더 이상 백신으로 인한 사망자 보도를 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이런 소동이 벌어졌을까?

감염의학 전문의들은 노령 인구의 하루 평균 사망자 수는 변화가 없는데 올해 예방접종이 늘어나다 보니 접종하고 며칠 안 되어 사망하는 것처럼 보여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예년 통계를 보아도 우연히 사망 시기와 접종 일시가 맞아 떨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그리고 왜 백신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고 연결을 지었던 것일까?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인과관계의 사슬로 얽혀있다.

어떤 현상도 A 때문에 B가 일어났으며 A만 아니었어도 B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식의 단순한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심리는 이러한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내가 현재 고통을 겪고 있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책임져야 할 원인이 있다는 식으로 인과론과 책임론을 결부시킨다.

대표적인 영역 중 하나가 의료영역이다.

치료 받던 환자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적지 않은 경우 그 화살은 의료 시설이나 제도, 그리고 환자를 돌본 의사를 향한다.

물론 잘못된 의료행위가 드문 것도 아니고,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순진무구한 인과론과 책임론은 인과적 사슬의 복잡성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라도 정해진 절차를 벗어난 것이 있으면 그것 때문이라고 단정 짓곤 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인과론이나 책임론에 매몰되지 말고 당사자인 내가 현재를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 지에 몰두하는 것이다.

부동산 폭등도 이전 정권 탓이라고 외치는 현 사회에서 백신 사건은 우리를 돌아볼 계기를 제공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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