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수 ETRI 기술상용화센터장

‘최소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독일의 생물학자인 리비히(J.F. Lievig)가 1843년에 주장한 것으로, 식물의 생산량은 가장 소량으로 존재하는 무기 성분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이론이다.

즉 식물이 자라는 데는 10개의 원소가 필요한데, 만약 하나라도 없거나 부족하면 다른 원소가 아무리 많아도 식물이 정상적으로 자랄 수 없고 생산량은 가장 결핍한 원소의 양에 의해 제한된다는 말이다.

그는 나무판자를 붙여서 만드는 물통에 빗대어 설명하면서 통에 물을 채울 때 아무리 다른 판자들이 높아도 판자 하나가 짧으면 그곳으로 물이 새나가 물통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기껏해야 가장 짧은 판자의 높이를 넘지 못하는 것과 같아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국가 수준도 최소량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

OECD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인터넷 평균 속도에서 세계 1위이고, 정보화 지수는 세계 2위, 전자정부 발전지수는 3위로 이 지표들만 보면 우리나라도 가히 세계와 견주어 자랑할 만하다.

반면 OECD 국가 중 저출산율 1위, 자살률 1위, 교통사고 사망률 4위, 노인 빈곤율 및 자살률 1위, 연평균 근로시간 2위, 임금 격차 1위 등 불명예스러운 것들의 순위도 꽤 높다.

그 결과는 우리나라의 행복지수가 2020년 153개국 중 61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의 많은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결국 우리나라에 결핍된 여러 가지 요소들이 결국 우리의 행복 수준을 결정한 것이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연구현장은 어떨까? 연구개발 성과 측면에서 본다면 정부출연연구원(이하 출연연)들은 다수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의 오랜 기간 지속적인 투자의 결실이라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정부는 코로나 19로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2021년에 27.2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전년도 24.2조원 대비 12.3% 증가한 것으로, 파격적인 투자 결정이다. 이렇듯 R&D 예산도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하고, 탁월한 연구성과도 나올 수 있다면 연구자들은 마음껏 연구할 수 있어 좋을 것만 같은데, 정작 R&D를 수행하는 주변의 출연연 연구자들을 만나보면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객관적인 수치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출연연에 소속된 연구자들의 연구환경 대한 만족도 조사결과를 보면, 1995년에 연구자의 69.3%가 대체로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던 것이 2016년에는 42.1%로 급격히 나빠졌다.

20여 년 동안 연구자의 연구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무려 27.2%가 떨어진 것이다. 최근 5년 동안 643명의 연구자가 연구원을 떠났고 그중 절반 이상이 대학으로 이직했다.

상황이 이 정도면 연구환경에 대한 논의가 심각하게 다루어질 법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면서도 낮은 연구 생산성에 대한 질타는 계속된다.

진정으로 연구생산성 개선을 원한다면 정부출연연의 연구환경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앞서 언급한 ‘판자로 짠 물통’의 예를 바로 적용할 수 있다.

R&D 예산증액이 물통의 가장 긴 판자라면, 지금 연구자의 연구환경은 가장 짧은 판자이다. 그리고 연구 생산성은 통의 물과 같아서 결코 연구자의 연구환경 수준을 넘을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최소량의 법칙이 연구현장에 던지는 메시지며, 정부가 R&D 예산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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