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우 YTN 충청본부장

데이트 폭력(dating abuse). '남녀가 이성 교제 중 벌어지는 폭력'을 말한다. 이는 신체적 상해, 몸짓이나 언어를 통한 정신적 압박과 위협 등을 포함한다. 가벼운 손찌검이나 물건 던지기부터 구타, 폭행,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둘만의 문제로 돌려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다. 가해자·피해자 모두 일종의 사랑싸움으로 치부해 폭력을 문제시하지 않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해자는 데이트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려 폭력을 정당화함은 물론 피해자 역시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고 폭력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데이트 폭력이 즉각 공개되지 못하는 데는 사랑싸움 이전에 아주 교묘한 심리조작이 있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다. 권력 관계에서 지배적 위치에 있는 사람은 상황조작을 통해 상대방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든다. 결국 상대방은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권력 소유자는 상대방에게 지배력을 행사한다.가스라이팅은 1938년 영국 ‘가스등:Gas light’이란 연극에서 비롯된 정신적 학대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이 연극은 상속재산을 노리고 멀쩡한 아내를 정신질환자로 만드는 한 사나이의 탐욕을 그린 고전 심리 공포극이다. 이 연극의 줄거리는 이렇다. 남편은 집안 가스등을 어둡게 만들어 놓고 아내가 어둡다고 하면, 아니라고 아내에게 핀잔을 준다. 주변 환경과 소리까지도 조작해 아내가 현실감을 잃도록 한다. 그러면 아내는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존하게 된다. 즉 이런 상황에서 남편은 어떤 짓(상속재산 몰수)을 저질러도 아내는 남편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데이트 폭력은 권력 관계에서 우위를 점한 자가 상대방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물리적, 비물리적 행위다. 하지만 가스등 효과(gaslight effect) 때문에 상대방은 자신이 당하는 피해를 부지불식간에 정당화한다. '맞아. 내가 잘못이야. 이런 피해를 봐도 싸지’라고 말이다. 데이트 폭력은 수면 아래 지속하다 보면, 자칫 가학성(sadism)과 피학성(masochism)으로 굳어져 겉잡지 못하는 파국으로 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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