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전배 천안예술의전당 관장

장맛비, 채솟값, 날갯짓은 맞는 표현. 하교길, 선지국, 판자집, 보리고개는 사이시옷이 없어 틀린 표현이다. 사이시옷(ㅅ)은 어근과 어근이 합쳐 생긴 합성어 둘 사이에 발음이 된소리가 나거나 덧날 때 이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문자를 말한다.

합성 명사일 때 사이시옷을 붙이는 단어로 ‘촛불, 잇몸, 나뭇잎, 나룻배, 아랫니’ 정도는 견딜만하다. ‘꼭짓점, 등굣길, 최댓값, 북엇국, 하굿둑, 막냇동생, 만홧가게,…’ 이쯤 되면 맞춤법 교본을 패대기치고 싶어진다. 군더더기 사이시옷을 욱여넣어 단어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본래 형태를 일그러뜨린 것에 대한 사용자들의 거부감 표출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이시옷 무용론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이시옷이 비판받는 또 다른 이유는 사용자 편리성 저해, 경음화 현상 심화, 언어 경제성 역행이라는 불편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서울신문 어문부 이경우 記者는 “한글 맞춤법 규정을 버리자는 주장은 여전히 힘이 있다. 맞춤법을 어겨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규정을 찾지 않아도 어법을 맞추는데 지장이 없으면 된다는 뜻이다. 과도한 규정은 오히려 현실 언어생활을 방해하기도 한다.”고 기사로 적시했다.

내친김에 코미디 같은 현행 사이시옷 실태를 소개한다. 부잣집은 되는데 피잣집은 안 된다. 한자+고유어는 가능, 외래어+고유어는 불가. 경음화되는 내과, 치과는 한자+한자라 사이시옷을 적용하지 않는다. 발음의 명확성 측면이라면 숫소, 댓가, 갯수, 싯가, 잇점, 홧병 등에는 사이시옷이 없어야 맞다. 반면 냇가, 샛길, 콧등, 뱃속, 햇살 등은 사이시옷을 적용한다. 곳간, 셋방, 찻간, 툇간, 숫자, 횟수는 두 음절 한자 중 예외적으로 사용하는 예다. 그러나 햇님은 해님, 갯펄은 개펄, 윗층은 위층, 나룻터는 나루터로 쓰라하니 참으로 모호하다.

심지어 천안 아우내(竝川)의 소문난 별미 표기가 ‘순대국’ 아닌 ‘순댓국’이라니 목이 턱턱 막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애국가의 동해물은 왜 ‘동햇물’이라 하지 않는가. 우린 일상 대화에서 단어 하나만 던지지 않는다. 언어 맥락으로 소통하고 의중을 헤아리며 교감한다. 버리고 싶은 유산 같은 사이시옷을 소멸시켜도 지장이 없는 연유다.

이번에는 치명적인 맞춤법 포기 사례 사글세(朔月貰) 사건. 민망하게도 삭월세는 사글세의 비표준어란다. 뜻은 남의 집이나 방을 빌려 쓰는 값으로 몫 돈을 미리 내고 다달이 깎아나가는 것. 삭월이라는 발음은 어린 백성이 이르고자 하여도 제 뜻을 쉽게 펴지 못하리라 여겼나 보다. 이를 불쌍히 여겨 삭월세를 사글세로 친절히 고쳐놓은 것 같다. 만약 발음 편의성 논리라면 쓰기도 읽기도 어려운 폄훼(貶毁) 같은 단어는 어찌 방치하는가. 차제에 ‘펴매’처럼 쉬운 표기를 권해드린다.

表意문자 漢字는 글자 모양만 보고도 의미를 헤아릴 수 있지만 表音문자 한글은 소리와 표기가 일치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기록할 때 망설이고 말할 때마다 저어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어교사들도 맞춤법 용례 적용은 만만치 않다. 하물며 일반인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여러 사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국립국어원 역시 한글 맞춤법의 복잡성을 모르는 바 아니다. 큰 비용을 들여 사이시옷 활용 개선방안 실태를 조사했으나 지난해 2월 당장 바꾸기는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개선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누더기 한글 맞춤법과 사족(蛇足) 같은 사이시옷. 규정한 곳도 답답하고 쓰는 이도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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