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음·양이 相合하는 기지시 줄다리기
윤년 드는 해 농한기 되면 새끼로 대형줄 제작
행사 땐 외국인 관광객까지 참여해 당기고 밀어

▲ 1976년 기지시줄다리기 모습. 당진시 제공
▲ 2018년 기지시줄다리기. 당진시 제공

조선 선조 임금 때 충남 당진시 송악면과 아산만 일대 바다에 해일이 일어났다. 바다 인근 많은 고을이 물에 잠기는 등 큰 피해를 입었고 전염병 까지 창궐하였다. 그때 한 이름 있는 풍수가가 이곳 기지시를 지나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여기 지형이 옥녀가 베틀에 앉아 베를 짜는 형국이니 윤달이 드는 해에 볏짚으로 줄을 엮어 줄다리기를 하면 모든 재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오."

이것이 오늘까지 이어오는 '기지시(機池市) 줄다리기' 의 탄생 설화다.

국가 문화재 75호로 지정돼 있고 2015년에는 유네스코에서 '인류 무형 문화유산' 으로 다른 4곳과 함께 지정될 만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윤년이 드는 해 농한기가 되면 이곳 주민들은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 다시 그 새끼로 대형 줄을 만든다.

길이가 200m나 되고 둘레가 1.8m, 이렇게 큰 줄을 만들려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볏짚도 몇 트럭 물량이 필요하다. 논이 많은 평야지대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경비도 많이 드는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는 기지시에 지부를 둔 예당상무사에서 지원을 했다. 상무사는 조선시대 지역 상권과 유통업을 장악하고 있던 보부상의 조직이다.

기지시는 예산군 광시와 함께 리(里)단위 마을이지만 시(市) 이름이 붙었음은 이곳에 큰 장이 섰다는 것을 의미하며 장사가 번창했음을 말한다. 그래서 많은 경비를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기지시 줄다리기는 농민, 어민, 상인 이렇게 세 계층이 힘을 모아 이루어 진 '협동'의 산물이다.

행사 당일에는 기지시 주민들 뿐 아니라 인근 주민들과 최근에는 이 행사가 널리 알려져 외국 관광객 까지 참여하여 장관을 이룬다. 200m나 되는 공룡 같은 줄에 매달린 사람들이 농악대 연주에 맞춰 외치는 고함 소리는 지축을 울린다. 사람들은 물위(水上)팀과, 물아래(水下)팀으로 나뉘는 데 서로 당기고, 밀고…그러다 암줄과 숫줄을 비녀장으로 연결하면 줄다리기는 절정을 이룬다. 이 장면이 남녀의 성(性) 행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당진시 제공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당진시 제공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당진시 제공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당진시 제공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당진시 제공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당진시 제공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당진시 제공
▲ 기지시줄다리기박물관. 당진시 제공

그래서 관광객들은 색다른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줄다리기는 3판 2승제로 운영되는데 물위(水上)팀이 이기면 그 해에 평화가 찾아오고, 물아래(水下)팀이 이기면 풍년이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까 어디가 이기든 다 좋은 것이다.

줄다리기 중간 중간에도 풍악을 울리며 막걸리로 흥을 돋우는 등 완전히 축제가 벌어진다.

외국 관광객이 이곳에 흥미를 갖는 것도 '민간신앙'을 축제화한 연출력 때문일 것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줄을 끊어 간다. 음과 양이 상합(相合)한 것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부적처럼 집에다 놓으면 집안에 액을 막아 준다는 속설 때문이다. 심지어 옛날에는 아기 못 낳는 부부들이 이 줄의 볏짚을 약용으로도 썼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 민속축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널리 홍보하기 위해 당진시는 당진시 송악읍 안틀모시길에 줄다리기 박물관을 세워 운영하고 있다.

줄다리기 박물관은 전국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한때 남북 화해 차원에서 남·북이 기지시 줄다리기를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나왔었다. 그런 날이 오기란 지금으로서는 요원한 것 같다.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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