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 어른들이 친구를 잘 가려 사귀라는 훈계를 많이 하셨는데 사실 이런저런 문제나 사건사고에는 잘못 사귄 친구, 잘못 발 들여놓은 동아리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자연히 몸이 검게 된다는 경고의 함의를 되새긴다. 열정과 의욕으로 국회에 들어간 초선 의원들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에 선배 의원들을 답습하는 것은 환경의 영향이 지대함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거부도 하고 저항도 했겠지만 그 의지와 판단은 이내 거대한 물결에 휩싸이고 결국 물들게 된다. 21대 국회 개원 석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일부 초선 의원들의 언행은 근묵자흑이 여전히 강력하게 실존함을 보여준다. 애당초 그런 기질이 있는 사람이 그런 환경에 노출되니 물 만난 고기처럼 대번에 검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근묵자흑은 정신, 심리적 차원만이 아님을 코로나 환경에서 절감한다. 마스크 쓰기, 거리두기 등은 근묵자흑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인데 일부러 그 '묵'을 향하여 돌진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나 각자 지향하는 목표는 사람들의 얼굴이나 개성만큼 다양하다. '근묵자흑', 코로나 확산이 지속되는 한 누구나의 가슴에 새길 경구인데 문제는 그 묵이 어디에 있는지 언제 나타날지,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그 묵이 아닐지 가늠하기 어려운 탓에 불안과 경계로 고단해진다.

#. 이럴 때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경구로 처염상정(處染常淨)을 생각한다. 진흙에서 피지만 오염된 흙탕물이 묻지 않는 연꽃의 고고함이 떠오른다. 오염되고 구차한 환경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아가기를 권면하는 이 4자성어는 철학적이고 깊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우선 특히 지금과 같은 코로나 위협에서 간직할만한 일상의 자세로 깨우쳐 본다.

통영 국제음악당 경내 윤이상 선생(1917∼1995) 추모공간에는 '처염상정'을 새긴 돌이 놓여있다<사진>. 그 어떤 역경과 혼란, 박해에도 흔들리지 않고 세계적인 음악가로서 자신의 예술을 추구해온 그분 삶의 역정을 함축한다.

근묵자흑, 처염상정. 현실의 차원이나 정신적 세계를 막론하고 노출되기 쉬운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우리 삶의 지표로서 두 짧은 경구의 넓고 깊은 의미를 끝 모르고 이어지는 이 엄중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다시 생각한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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