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대한건축사협회 대전시회장

매일 오가는 출퇴근길 옆, 길게 이어진 진초록빛 산능선을 따라 하얀 쉬폰 커튼 같은 운무가 펄럭이는 모습이 마침 라디오에서 나오는 조지 거슈인의 '랩소디인 블루'에 맞춰 춤을 추는 듯한 기분이다. 계속 지속된 긴장감으로 지친 마음과 몸을 위로하는 듯한 이 아름다운 감정은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한 새로운 에너지이다.

건축도 마찬가지일 때가 있다. 평범한 가로를 거닐다가 멋진 집이나 건물을 발견하면 살고 싶다, 갖고 싶다 등의 본능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 이전에는 없던 건축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열광하는 sns에서의 사진들을 보면 멋진 모습의 건축이나 특색 있는 인테리어가 있는 장소들이 즐비하다. 그만큼 잘 완성된 건축디자인에 대한 열망이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조금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그 욕구를 채울만큼 잘 된 디자인을 갖고 있는 건물이 많지 않다라는 반증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기능과 단순한 마감으로 최소의 비용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직도 부지기수이며, 소위 사업성을 운운하며 불법 요소로 가득 채운 건물 또한 흔하게 볼 수 있음은 기성 세대의 건축에 대한 저급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임을 물론 지자체의 도시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없음을 보여주는 현실이라 생각한다.

지난 2019년도 대전시 민간건설사업은 허가 2724동, 연면적 361만 5000㎡으로 공사비를 추정하면 약 7조 3000억원 정도가 된다. 대전시 예산을 훌쩍 초과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이 민간건설사업에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노후된 단독주택을 철거하고 새로 지어지는 다가구주택들을 보며 도시나 마을이 발전되고 있다고 느끼는 시민은 과연 얼마나 될까? 옹기종기 모여 있던 동네가 철거되고 높은 판상형 아파트가 채워지는 것을 보는 느낌은 다를 것인가? 디자인의 질을 높이고 건설의 품질을 높이는 것, 마을의 정서를 보전하는 것과 도시의 발전방향에 부합하는 것을 온전히 민간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은 과연 괜찮은 것일까?

우선, 부실시공과 불법시도를 자행하는 원인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을 수립해서 저질의 건축행위를 근절해야 한다. 매번 형식적인 관계기술자의 처벌로서는 근본적인 성과를 달성할 수 없음을 지자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지역정서를 잘 알고 반영하여 설계와 시공에 접목할 수 있는 지역 전문가와 관계업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의 부족함을 핑계로 지역업체를 도태시키지 말고 적극적인 행정과 시민들의 따뜻한 응원으로 지역의 브랜드를 함께 창출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관협치'가 실제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행정의 변화가 필요하다. 건축은 물론 모든 행정의 성공은 민의를 얼마만큼 반영했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칙처럼 여기고 과감한 행정의 변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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