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한남대학교 학생

우리는 여러 순간들이 만들어낸 세상 속 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그 순간들을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갇히게 하여 오래토록 저장한다. 이렇듯 사진은 인간에게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들을 상기시켜 행복한 감정을 유발시킨다. 하지만 여기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으로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포토저널리즘 사진작가들이다. 포토저널리즘이란 언론의 한 분야로서 말과 글 대신 사진으로 사건 자체를 보도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의 사진만으로 사건을 말하는 포토저널리즘은 자신들의 삶 외에 다른 분야에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하지만 이런 포토저널리즘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에게 있어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하나의 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인 "굶주린 소녀와 독수리"가 있다. 이 사진을 찍은 케빈 카터는 전쟁과 가난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을 통해 사회에 알리고자 했고, 실제로 아프리카 남수단의 비참한 기근 실상이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녀를 즉시 구하지 않은 사진작가의 도덕성을 비판하였다. 이렇듯, 포토저널리즘은 사진작가의 직업의식과 고통 받는 주체가 도움 받을 권리, 이 두 가지 중 무엇이 우선하는 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필자는 사진에만 집중하여 그 아이의 고통을 방관했다는 사람들의 의견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카파이즘이라는 말을 아는가? 이는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는 용감한 기자정신을 뜻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전과 기근 등의 문제를 안타까워만 할 때 사진작가들은 그 실태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진을 찍는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사회의 문제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러한 카파이즘 정신의 실현은 비판만하기에 바쁜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동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사진 속 주체를 바로 도와주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은연중에 연민이 존재한다. 그들은 사진 속 주체의 상황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불쌍하다고만 생각한다. 이러한 연민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공감의 자세가 아니다. 진정한 공감은 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고통을 더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은 사진을 접한 사람들이 아닌 그 사진을 찍기 위해 현장까지 갔던 사진작가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실태를 몸소 느끼고, 그것을 고발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이 비판을 받아도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이유일 것이다. 전시상황으로 제 발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포토저널리스트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카메라에 담아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전쟁 속으로 뛰어들어간다. 이처럼 포토저널리즘의 작가들은 위험도가 높은 일을 앞장서서 해내는 사람들이다. 물론 이러한 순수한 취지를 벗어난 옐로저널리스트도 존재한다. 옐로저널리스트는 현대 다수의 기자들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자신의 언론사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이익집단일 뿐이지 기사의 긍정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사회적인 반향 및 관심을 일으키려는 카파이즘을 실현하는 진정한 사진작가들이 아니다.

따라서 수용자들은 옐로저널리즘과 포토저널리즘의 경계를 구분해 언론의 옐로저널리즘은 비판하되, 이와 혼동하여 카파이즘이라는 포토저널리즘의 본래 정신을 비판하면 안 된다. 또한 포토저널리즘의 사회고발의 특성을 존중하여 그 사진을 단면적으로 접했을 때 나오는 연민을 멀리해야한다. 그래서 사진이 지닌 장기적인 영향력을 고려하여 사진이 널리 알려졌을 때 생길 범지구적 구호 유도에 힘써야한다. 즉, 이러한 수용자의 자세야말로 포토저널리스트들의 활동을 자극하여 생길 전 세계적인 공감과 실질적인 구호의 유도제이고, 이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을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공감의 시작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