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 서예이야기 399>

진(秦)나라 말엽(末葉) 양성(陽城)에서 남의 집 머슴살이로 생계를 유지하던 진승(陳勝)은 비록 불우한 처지에 있었으나 그의 가슴속은 항상 진나라의 폭정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해야겠다는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가 어느 날 힘들게 일하고 있는 동료들을 향해 말했다.

“앞으로 내가 큰 인물이 되더라도 그대들만은 결코 잊지 않겠네.”

그의 친구들은 진승의 갑작스러운 말에 어처구니없는 얼굴을 하며 핀잔을 했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머슴살이 주제에 무슨 큰 인물이 된다고 그래.”

그러자 진승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친구들을 보며 한심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찌 참새나 제비 따위가 기러기나 고니의 큰 뜻을 알 수 있겠는가?(연작안지 홍곡지지:燕雀安知 鴻鵠之志)”

그 후 진시황(秦始皇)이 죽자 나라에서는 만리장성의 수비를 위해 마을 사람들을 징발했는데 진승도 둔장(屯長)의 한 사람으로 차출됐다.그들은 목적지인 어양(漁陽)을 향해 출발해 대택향(大澤鄕)을 지나던 중 큰 비를 만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대택은 회하(淮河)의 지류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저지대라서 비만 오면 길이 끊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예초부터 빡빡하게 짜였던 일정이었으므로 그들이 정해진 기한 내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이미 글러 버렸다.

당시 진나라의 국법에는 징발 기일을 어기면 참수형을 당하게 돼 있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 된 진승은 고향에서 같이 출발한 동료 둔장인 옥광과 손을 잡고 같이 가던 장정 9백여 명을 선동해 인솔하던 관리들을 죽여 버리고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폭정에 숨죽이고 있던 농민들이 호응하여 그들의 세력은 순식간에 수만 명에 이르렀다.

이를 도화선으로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나 거대한 제국 진나라는 겨우 15년 만에 멸망해 버리고 천하는 다시 군웅(群雄)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진(秦) 멸망의 첫 봉화를 얼린 이가 양성(陽城)에서 남의 머슴살이를 하는 진승(陳勝)이라는 자로 연작홍곡(燕雀鴻鵠)의 성어를 바꾸어 놓았다.

<국전서예초대작가·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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