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형식 충북본사 부국장.

심형식 충북본사 부국장

2014년 일이다. 옛 청원군을 출입하면서 난개발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썼다. 현장을 누비며 반토막 난 산줄기, 보기에도 위험한 절개지를 보며 심각함을 느꼈다. 그리고 통합 청주시 출범을 앞두고 조례를 재정비 할 시기에 난개발 방지를 위해 옛 청원군 지역의 개발행위 가능 경사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기획기사를 수 차례 썼다. 기사가 나간 후 한 업종의 협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조례 정비가 이뤄지는 줄 몰랐는데 심 기자 기사 덕분에 알았다.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청원군 지역 이장단협의회, 각종 건축 관련 업종의 협회 등이 똘똘 뭉쳐 의회에 압박을 가했다. 결국 조례는 옛 청주시와 청원군의 개발행위 가능 경사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기사의 기획의도와 다른 결과에 속이 쓰렸다.

최근 이 같은 논란이 재연됐다. 최근 청주시의회는 무분별한 소규모 개발 사업을 막기 위한 ‘도시계획 조례 일부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부결시켰다. 애초 개정안은 경사도 15도 미만만 개발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상임위원회에서 15~20도 사이는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치도록 수정됐다. 하지만 수정안 조차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무분별한 개발행위를 제한해 녹지를 보존하는 것은 모든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옳은 정책이다. 이런 좋은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짚어봐야 한다.

녹지가 보존돼 얻는 이익은 시민 모두에게 돌아가는 보편적 이익이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왜 목소리를 내지 않을까. 그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든 비용이 든다. 시간을 내 의원들에게 전화를 하든, 인터넷에 글을 올리든 귀찮음이 동반된다. 반면 녹지가 보존돼 얻는 이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를 ‘합리적 무지’라고 부른다. 반면 개발행위가 필요한 쪽은 재산권, 사업권이라는 큰 이익이 걸려있다. 개발행위가 가능한 토지와 그렇지 않은 토지의 가치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개발행위에는 토목, 설계, 측량, 건축 등 건설과 관련된 모든 업종이 걸려있다. 건설업종은 지역색이 강하다. 다른 지역에 진출하는 것은 많은 비용이 뒤따른다. 옛 청주시인 도심 지역은 이미 개발 가능한 곳이 많지 않다. 청주 지역 건설업계에게 옛 청원군 지역은 마지막 노른자다. 이렇게 특수한 이익이 걸린 특수집단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는다. 의견을 내놓는 비용보다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난개발을 막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보편적 이익을 보는 시민들이 ‘각성(覺醒)’하는 것이다. 이들을 깨우기 위해서는 언론을 통한 문제제기, 공청회, 시민운동 등이 먼저 이뤄졌어야 한다.

특수이익을 보는 집단을 설득하고 이익을 줄여 개발행위 압력을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개발행위 압력을 낮추는 방안도 여러가지가 있다. 보편화 된 개발행위분담금을 보다 높이거나, 개발행위에 비례해 녹지를 조성하는 방법, 이번 수정안과 같이 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 방법 등이다. 개발행위를 원하는 쪽은 단체화 돼 있다. 각 단체를 만나 사전에 협의를 거쳐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개발행위를 원하는 쪽을 ‘돈만 밝히는 개발업자’로 규정해서는 대화가 성립될 수 없다. 그들의 ‘재산권’, ‘사업권’을 인정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해 양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애석하게도 이번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이 같은 움직임은 없었다.

정치는 현실이다. 수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내가 옳다’고 모두가 찬성하지는 않는다. ‘옳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인내, 설득이 필요하다. 1대 청주시의회가 끊임없이 논란이 그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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