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直指는 찾아야 한다
독일 구텐베르크보다 70년 앞선 '책'
박병선, 프랑스 국립 도서관서 발견
우리 정부 반환 요구… 佛, 완강 거부
A씨, 청주 청원 집에 보관 직지 떠올려
찾으러 갔지만 이미 다른사람 손에…
경찰, 3차례 가택수색했지만 無소득
이것이 우리나라 수사력 한계인걸까

▲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직지'. 앞에 도서관 확인번호가 찍혀있다.
▲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직지'.
▲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흥덕사. (사적 315호) 고려 우왕 3년 (1377년) 이곳에서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직지'를 찍었다.
▲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있는 흥덕사. (사적 315호) 고려 우왕 3년 (1377년) 이곳에서 세계 최초 금속활자로 '직지'를 찍었다.

1967년 어느 날,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서 박병선 박사는 한국 관련 고서를 찾다가 큰 글씨체로 표지에 直指라고 쓰인 책에 눈이 번쩍 뜨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이 역사적인 순간에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다.

인류 문명사를 새로 써야 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물을 찾았으니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독일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해 종교혁명과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됐고 대량 인쇄술, 곧 매스미디어 시대를 열었는데 그보다 70년이나 앞서 1377년 고려 우왕 때 청주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가 나온 것이다.

박병선 박사는 이 사실을 공개했으나 유럽 학계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인류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직지'를 학계에 알리기 위해 고독한 싸움을 계속했다.

그러다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책의 역사에 대한 종합전람회가 파리에서 개최됐는데 비로소 이때 직지가 독일 '구텐베르크' 보다 70년 앞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임이 세계적 공인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끝장에 백운화상(白雲和尙)에 의해 청주에 있는 흥덕사에서 1377년 금속활자로 인쇄를 했다는 기록을 뚜렷이 남겼다. 그래서 청주가 인류문화의 새 장을 연 도시임을 천명한 것이다.

책의 정식 이름은 '백운화상초록 직지 심체요절'로 승려들의 수행에 대한 내용을 기술한 것.

이 책이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에서 발견된 것은 구한말인 1887년 프랑스 공사 쁠랑시가 매입, 본국으로 가져간 때문인데, 이를 반환하라는 우리 정부의 거듭된 요구를 프랑스 정부는 '약탈이 아닌, 매입으로 획득한 것'이라는 이유로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그런데 고려시대 청주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 냈다면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돼있는 것 말고도 국내에 더 있지 않겠는가 하는 주장이 제기 됐다. 금속활자까지 만들어 달랑 책 한 권을 찍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TV를 비롯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룬 1990년대 '우리 집에 조상 때부터 전해 오는 책이 '직지'가 틀림없다'고 나선 사람이 나타났다.

당시 충북 청원군에 살고 있던 A씨.

그는 잠시 집을 떠나 객지에 있다가 TV에서 프랑스 소장 직지 사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아, 저것 우리 집에도 있는데… '하며 그 길로 집으로 달려 갔다.

그의 집안은 관찰사, 판서 등 고위직을 많이 배출한 명문가였고, 불교계와도 인연이 깊어 '직지'를 소지할 만한 충분한 여건이었다.

그러나 집에 오니 '직지'라고 믿었던 그 고서는 대전에 있는 친척 B씨가 빌려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A씨는 바로 B씨에게 달려갔으나 책은 다시 C씨에게 넘어 가고 없었다. C씨는 책을 B씨에게 돌려 줬다고 주장했으나 '직지'로 생각하는 그 책이 아니고 다른 책이었다는 게 A씨의 주장. 물론 C씨는 다 돌려 줬다고 주장했고 당초부터 '직지'는 없었다는 것이며 마침내 고소·고발전이 시작됐다. 청주의 시민단체인 '직지 찾기 운동본부'가 결성되기도 했다.

경찰은 세 차례에 걸쳐 C씨의 집을 가택수색까지 하는 등 '직지'찾기에 나섰지만 헛수고만 했고, 많은 언론 역시 '직지'찾기 추적보도를 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산소를 파고 묻었을 것'이라는 등 말만 무성하고…’

만약 '직지'를 찾게 되면 국보 1호 숭례문(남대문)이 '직지'로 바뀌고, 세계사적 의미를 가진 도서로 거듭날 텐데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국보급 보물을 정말 못 찾는 것일까. 이것이 우리나라 수사력의 한계일까…. <충남복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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