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종이상자만 덩그러니…불만·체념 그리고 공감
종이박스 든 채 두리번두리번
손님들은 당황…직원들은 난처
물건 무게 늘수록 고민도 커져
환경 생각에 감수하는 의견도

올해부터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 종이상자만 남고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이 없어졌다. 2일 대형마트의 찾은 사람들은 자율포장대 근처에서 종이박스를 든 채로 테이프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진=이심건
올해부터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 종이상자만 남고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이 없어졌다. 2일 대형마트의 찾은 사람들은 자율포장대 근처에서 종이박스를 든 채로 테이프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진=이심건

[충청투데이 이심건 기자] “박스 테이프는 없나요. 테이프 안되면 종이 노끈이라도 주세요.”

올해부터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 종이상자만 남고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이 없어졌다. 대형마트들은 대안으로 장바구니를 제작해 대여·판매하는 등 사용을 독려했으나, 현장에서는 '포장 도구를 없애기만 하고 후속 조치는 손을 놓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2일 오전 대전 동구의 한 대형마트는 새해부터 시작된 초저가 할인 상품을 사기 위한 고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계산대 밖에 마련된 자율포장대는 예전보다 혼잡이 덜했다. 1일부터 포장용 테이프와 끈 제공을 중단함에 따라 상자 포장을 포기한 고객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장을 본 뒤 자율포장대 찾은 사람들은 종이박스를 든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박스에 붙이는 포장용 테이프나 끈을 찾지 못해서다. 당황한 손님들은 마트 직원을 찾아 테이프를 달라고 했다.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제는 테이프나 끈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장 출입구와 에스컬레이터, 계산대 상단, 자율포장대 위에는 '1월 1일부터 포장용 테이프·끈 제공이 중단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갑자기 테이프와 끈이 사라지다 보니 급한 대로 박스 하단을 딱지처럼 접어 쓰는 사람도 많았다. 동구에 사는 김모(62) 씨는 "초저가 할인에 상품을 잔뜩 샀다”면서 “예전 같으면 물건을 상자에 넣어 테이프나 끈으로 고정해 갔겠지만, 박스를 고정할 수 없어 무거운 물건들은 장바구니에 넣었다"고 토로했다. 

매장 출입구와 에스컬레이터, 계산대 상단, 자율포장대 위에는 '1월 1일부터 포장용 테이프·끈 제공이 중단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진=이심건
매장 출입구와 에스컬레이터, 계산대 상단, 자율포장대 위에는 '1월 1일부터 포장용 테이프·끈 제공이 중단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사진=이심건

달라진 정책을 알지 못한 채 마트를 찾았다가 곤욕스러워하는 시민도 있었다. 주부 박모(65) 씨는 "테이프를 오늘부터 주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왔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장바구니 몇 개를 샀는데, 상자만 못한 거 같아 종이 노끈이라도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농협하나로마트를 포함한 대형마트 4사는 자율포장대에서 포장용 테이크와 끈 제공을 중단한다. 당초 종이상자까지 없애기로 했지만, 상자 자체는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여론을 수용해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끈과 비닐 테이프만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무거운 물건을 상자에 넣을 경우 상자가 터지고 물건이 훼손될 우려가 있어 무용지물이란 지적이 나온다. 중구에 사는 최모(35) 씨는 "상자가 약한데 테이프가 없어 고정을 못해 물건이 밑으로 다 빠질까 봐 불안하다"며 "세제 2개와 섬유유연제를 담았더니 박스가 찢어졌다"고 말했다.

이마트 대전터미널점에서 장을 본 50대 부부는 종이상자에 물건을 담았다가 빼는 일을 한참 반복했다. 이 부부는 결국 "병은 떨어지면 깨질 테니까 그냥 들고 가야겠다"고 전했다.

불편을 토로하면서도 취지에 공감하는 시민도 있었다. 김현숙(63·여)씨는 "불편하긴 하지만 플라스틱 쓰레기를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며 "당장은 불편하겠지만 습관을 들이면 정착이 될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