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호 대전본사 편집부장

몇 달 전 친한 선배와의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취기가 오를 때쯤, 갑자기 선배가 축하인사를 강권했다. '혹시 로또라도 됐느냐'고 묻자 그 선배는 '드디어 개인회생이 끝났다'고 답했다. 필자는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진심어린 축하인사였다.

2004년 9월 23일부터 시행된 제도인 '개인회생(個人回生)'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파탄에 직면한 개인채무자의 채무를 법원이 강제로 재조정해 회생을 도모하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참 좋은 제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그것마저 버겁다.

얼마 전 한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는데 한숨이 참 깊었다. 도저히 상황이 안 좋아 '일수'라도 쓸 생각이란다. 다 아시겠지만, 일수란 본전에 이자를 합해 일정한 액수를 날마다 거둬들이는 일 또는 그런 빚을 말한다. 짧게 말하면 족쇄이고 자충수다. 필자는 현명한 선택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도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선뜻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그 친구에게는 미안하지만 필자의 삶도 팍팍하긴 마찬가지니까….

'빚'이란 참 무서운 존재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필요이상으로 친숙하다. 없는 사람보다는 있는 사람이 더 많다. 대학생은 학자금 대출을 받고 그것을 다 갚을 때쯤이면 전세자금을 받는다.

뭐 빚이 생기는 사정이 한두 가지는 아닐 것이다. 어쩔 수는 없겠지만 참 무섭다.

일수라도 써야겠다던 그 친구의 그런 용단(?)은 빚은 갚기 위해서였다. 빚을 갚기 위해 또 빚을 내는 악순환 말이다. 거짓말이 그렇듯 빚은 또 다른 빚을 부르고, 그것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진다.

금전적인 빚은 물론 마음의 빚도 참 무섭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채무의식'이 있을까.

개개인이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안고 있는 것은 '노무현'과 '세월호'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두 단어를 보고 '이제 그만 하자', '그만 우려먹어라'라고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다. 살다보면, 잊을 건 잊고 묻을 건 묻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악용해선 안 되겠지만) 완전히 망각해서도 안 되는 것이 있다. 2009년 5월 그 화창했던 토요일 전해진 '비보'가 그렇고, 2014년 4월 곳곳에서 꽃놀이가 열리던 아름다운 계절에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런 슬픔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과거에만 살 수는 없다. 마치 술에 취해 떠나간 옛사랑 이야기를 되풀이 하듯 의미 없는 푸념만 해선 안 된다. 그것이 아팠던 만큼 각성하고 반성해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얼마 전 본사 이사님의 정년퇴임식이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져 연단에 선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후회는 없습니다." 진심으로 부러워 스스로에게도 물었다. '한 20년쯤 지나서 난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새로운 한 해가 밝았다. 올 한 해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그 반대이든 말이다. 어떤 일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막을 수 없는 게 있다. 하지만 준비하고 노력한 만큼 그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일도 있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이, 그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빚'을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딱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높은 자리에서 큰 일 하시는 분들은 적어도 국민들에게 마음의 빚이라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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