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단국대 사학과 교수·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 중 박인호라는 인물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중·고교 한국사 교육과정에서 동학의 대표 인물로 최제우, 전봉준, 김개남, 최시형, 손병희 등의 인물 외에는 잘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내포에도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예산 사람 박인호(朴寅浩·1855~1940)이다. 그는 1883년 동학에 입도해 1894년 동학 농민혁명 당시 승전곡 전투와 신례원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동학이 천도교로 개편된 후에는 제4대 교주가 됐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교주로써 교단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33인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자금을 지원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1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후에도 신간회 활동과 멸왜기도운동을 전개하는 등 활발한 애국 독립운동을 펼쳐 해방 이후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이 밖에도 예산의 박덕칠, 태안의 문장로·함안석, 아산의 이신교 등 많은 동학의 지도자들이 내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내포 동학농민혁명의 특징은 반봉건과 더불어 일본 침략 세력을 몰아내려는 반제국주의 노선이 강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현재 충남에는 40여 곳의 동학 관련 유적지가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전라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수이다. 그중 23곳은 내포지역에 있는데, 주로 예산과 태안에 집중돼 있다. 이처럼 내포의 동학은 전라도에 버금가는 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공주 우금치와 홍성 홍주성같이 동학농민혁명의 쓰라린 상처가 남아 있어 우리 스스로가 외면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2004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에 대한 기념비 설치와 공원화 작업이 추진됐고, 아울러 전국적으로 동학농민혁명 기념사업회가 결성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이뤄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내포에서도 예산군 관작리에 동학 농민혁명 기념공원이 조성됐지만, 현재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방치되고 있다.

최근 들어 내포지역 동학이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시적으로는 태안에 전국에서 4번째로 동학기념관이 지어지고 있다. 이 기념관은 태안뿐만 아니라 내포지역 전체의 동학을 대표하는 내포 동학의 성지로 만들어져야 한다. 태안 백화산 교장 바위 아래에는 갑오동학 농민혁명군 추모탑이 세워져 있다. 이 추모탑은 내포지역 인사들이 건립위원회를 결성하여 세운 것이다. 이러한 전례를 모범으로 삼아 충청남도와 내포지역 기초 단체들이 힘을 합쳐 내포 동학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협력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동학 관련 자료가 빈약한 상황에서 태안만의 전시관을 고집하게 된다면 세금만 잡아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고무적인 일은 충남의 7개 기초단체에 결성돼 있던 기념사업회가 모여서 충남동학농민혁명단체협의회를 구성했고, 충청남도에서도 동학과 관련해 큰 그림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에서는 2017년부터 충남동학농민혁명단체협의회와 공동으로 동학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그동안 흩어져 있는 동학 자료를 전수 조사해 집대성하는 작업이다. 이를 토대로 학술연구와 개설서를 발간하고 협의체와 공동으로 관련 유적지를 사적지로 지정하는 방안과 내포뿐만 아니라 충남 전역의 동학 관련 유적지도 등을 제작해 답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 등 구체적인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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